꽃피는 봄날에 맞춰 일본어학교 4월 학기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와 관공서도 4월에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된다. 4월은 모든 게 새롭게 시작하는 달이다. 그동안 아니메와 드라마, 영화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벚꽃을 맞으며, 신학기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멋진 장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4월의 일본은 그런 모습이 결코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실제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일본에서 4월은 이런 이미지이다.
하지만 내 기분은 점점 더 우울해지고 있다. 좀 더 상급반으로 올라가면 나아질까 했는데, 일본어학교의 상황은 전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일본에 유학을 오는 한국인의 정체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정확히 말하긴 힘들지만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에 내가 들어가게 된 클래스는... 뭐라고 하면 좋을까... 설상가상(雪上加霜)도 좋을 것 같고, ‘여우 피하려다 호랑이 만났다’라는 표현도 좋을 것 같다. 지난 2번의 클래스에서는 중국인이 6~7명 정도 있었다. 굳이 남의 나라를 비하하고 싶은 맘은 없지만, 참 한심한 인간들이다. 태도불량+안하무인에, 공부도 안 하고, 이런 인간들이 나중에 기성세대가 될 것을 생각하니, 중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흔히 21세기가 아시아의 시대이고, 세계의 중심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하는데, 내가 볼 때 중국이 미국의 지위까지 가려면 꽤 긴 세월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내가 한창 일할 30~50대에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물론 내가 만난 학생들이 중국을 대표한다고 볼 수도 없고, 어학교가 그렇게 레벨이 높은 사람들이 오는 곳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국가의 미래를 파악하기 위해선, 엘리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행동과 생각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소한 중국의 일반적인 수준의 학생들의 경향으로 봐선, 중국의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진 않는다.
아무튼 이번 4월 학기 클래스에는 중국인이 2명밖에 없다. 여기까진 좋은데, 아뿔싸... 일본어학교에서 중국인이 적어진다는 것은 곧 한국인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그 2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전부 한국인이다. 쉬는 시간에는 일본어보다 한국어가 더 많이 늘린다. 내가 일본에 있는 건지,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위에서 잠깐 중국을 비하했었는데, 이젠 한국을 비하(?)할 차례이다. 나는 예전부터 유학생에 대해서 존경심 혹은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 꼭 일본이 아니더라도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부러움 반 질투심 반 바라보았다. 나는 스스로를 외국어 실력도 안 되고 돈도 없으니까 당연히 유학을 못 하는 인간이라고 생각했었다. 따라서 유학생을 공부도 잘 하고, 성실한 사람들로 생각했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럴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유학생들은 대체적으로(절반 정도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실하고,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도 높을 것으로 생각했다. 결론은 ‘전혀 아니다’이다. 어학 공부는 둘째로 치더라도, 국제사회에 대한 관심... 이런 거 전혀 없다. 국제사회까지 갈 필요도 없고,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일본의 역사/사회/정치/경제에 대한 관심조차도 거의 없어 보인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어학 공부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얘기를 하는 내가 ‘비현실적인’ 유학생이다.
한국에서 일본어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바쁘지도 않았으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꾸준히 다니지 않아서 지금 내 실력이 낮은 것이지만), 아주 놀라운 사실은,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보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실력이 더 낮다는 것이다. 내 경험을 일반화시키기엔 무리가 있지만, 일단 내 경험상 그렇다.
보통 일본에 오기 전에, 많든 적든, 독학이든 학원을 다니든, 일본어공부를 어느 정도 하고 온다. 그리고 한국의 학원은 하루에 1시간 수업이지만, 일본어학교는 4시간 수업이다. 따라서 일본어학교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일본어 실력이 월등히 높아야 한다. 그리고 직접 일본에 와서 살고 있는 거 아닌가? 소극적으로(?)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니라 직접 일본까지 와서 공부를 하는 것이라면, 일본어에 대해서 그만큼 열정과 관심도 더 있다는 식으로 ‘뻔한 스토리’가 되어야 상식이다. 이게 상식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상식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런 상식이 일본에 오면 뒤집어진다. 일본어공부에 대한 열정, 관심, 능력 모든 면에서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과 차이가 없거나, 아니면 더 낮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나도 뚜렷한 원인을 아직 못 찾았다.
공부 시간이 적어서? 아무리 공부를 안 해도 한국의 학원은 1시간이고, 일본어학교는 4시간이다. 일본에서 알바를 너무 열심히 해서? 한국에선 보통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학원을 다닌다. 관심과 열정이 적어서? 일본어에 관심과 열정이 없는데 일본까지 와서 공부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머리가 나쁜 애들이 유학을 오는 건가? 이것도 아니다.
여러 가지 생각해 봤는데, 모두 ‘정답’은 아닌 것 같다. 뭐 다른 곳은 안 그런데, 내 주변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정답은 간단하다. 그냥 내가 지극히 예외적인 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내 나름대로 이론(?)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직 확실한 그림이 그려진 단계는 아니다. 내 일본생활 경험이 너무 짧아서, 내가 세운 가설에 오류가 너무 많다. ‘일본유학의 정체’가 보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확실해 보이는 점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을 하든 일본에서 취업을 하든, 나름대로 성공적인 유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점. 이건 확실해 보인다. 과연 내가 그 ‘극소수’가 될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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