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바시구(板橋区)의 정액급부금(定額給付金) 신청서 용지와 회송봉투
일본이 돈이 많은 나라는 많은 나라인가 보다. 소비를 촉진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목하에 전국민에게 현찰을 뿌리고 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외국인(6개월 이상 장기체류자)에게도 준다.
정액급부금(定額給付金)이란 제도이다.
올 2월 1일 이전에 일본에 주민등록/외국인등록이 되어 있는 모든 사람에게 현찰로 지급한다. 1인당 1만 2,000엔(약 20만원), 18세 이하 청소년과 65세 이상 노인에겐 2만 엔씩 지급한다. 이를 위해 총 2조엔(30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예정이다. 참고로 작년도 일본의 정부 예산은 83조엔 정도였음.
정액급부금에 대해선 말이 많았다. 여당(자민당)의 선거용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었고, 과연 전국민에게 현찰을 주는 것으로 소비를 살릴 수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실제로 일본은 1999년 국민에게 지급한 현금 7,000억엔 대부분이 ‘소비’되지 않고 ‘저축’된 실패 사례를 겪었다. 그래서인지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요미우리 신문의 여론 조사에선 응답자의 4분의 3이, 아사히 신문의 조사에선 3분의 2가 정액급부금 지급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정책적 효과가 있든 없든, 국민 여론이야 어찌되었든 일단 지급하기로 결정된 일이다. 나 역시 이런 현찰뿌리기 정책이 경제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짓을 한다면(그럴 돈도 없겠지만) 극구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본 사람이 아니다. 정액급부금의 효과는 일본 사람이 걱정할 문제이고, 내 입장에선 주는 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일본 경제가 삐걱거리면 한국 경제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남의 문제는 아니다.)
정액급부금의 지급은 자치단체마다 시가가 조금씩 다른데, 내가 살고 있는 도쿄도(東京都) 이타바시구(板橋区)는 4월 1일부터 개별적으로 신청서를 우편으로 발송했다. 나도 받았는데, 잘 써서 보냈다. 서류작업이 끝나면 돈은 통장으로 입금될 예정이다. 아마도 그 돈은 그대로 통장에 있을 것 같다. 정부에서 소비하라고 주는 돈을 그냥 저축하는 것은 반역행위(?)이지만, 일본에 온 이후로 이런저런 생활용품 장만하느라 이미 소비를 충분히 많이 한 상황이므로, 이제는 저축 좀 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데 여기서 문득 이해가 잘 안 되는 점이 있다. 소비가 침체되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아서 매출이 떨어지고, 이는 곧바로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을 하는데 아무리 봐도 소비가 침체된 것처럼 보이질 않는다. 정말로 소비가 침체된 것인지, 과소비가 줄어든 것인지 이건 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옛날에 잘 나가던 시절에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다들 돈을 쓸 만큼 쓰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도로 위의 자동차가 크게 줄어든 것 같지도 않고, 슈퍼나 편의점에 손님이 크게 준 것 같지도 않고, 식당 앞에 줄이 줄어든 것 같지도 않고, 도대체 어디서 소비가 줄어든 것인지...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이지만, 뉴스에서 연일 외쳐대는 ‘금융위기, 불황, 소비 감소, 고용 악화’라는 무시무시한 말에 비해서, 현실 세계는 너무 조용하다. 조용히 침몰하고 있어서 그런 건가? 아무래도 ‘위기’란 말에 대한 감각이 다른 것 같다. 나는 길거리에 노숙자(실업자)가 넘쳐나고, 식량 구할 돈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집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야 위기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기대했던 것만큼 월급이 오르지 않는 것, 주머니 사정이 안 좋아져서 해외여행을 나중으로 미루게 된 것, 더 큰 차를 살 수 없게 된 것, 대기업에 취직할 수 없게 된 것 등을 ‘경제위기’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소비를 늘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런 정책...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건가? 한국과 일본은 수출주도형 국가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식 밑바닥에는 여전히 ‘저축은 미덕, 소비는 죄악’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내가 수출을 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수입을 해야 하고, 내가 물건을 팔아서 저축을 하려면 누군가는 내가 만든 물건을 소비해줘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선 당연하지 않게 생각했었다. 오히려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 즉 소비를 많이 하는 나라를 비난했었다. 자본주의의 노예라느니, 천박한 소비문화라느니, 소비를 많이 해서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있다느니...
그랬던 국가들이, 이제 국내 소비를 늘려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공허한 외침이었을 뿐이고, 반미(反美)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의 소비가 삐걱거리자, 곧바로 국내경제에 위기가 발생하는 국가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이것은 무능한 노조들의 주장이 허무한 이유와 비슷하다. 노조들이 노동자들의 권리나 복지, 임금, 고용안정 등에 대해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노조들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고 있다. 한쪽에선 임금 인상, 고용 안정을 외치고, 또 다른 쪽에 가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꾸준히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일하기 위해선,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누군가는 꾸준히 더 많은 돈을 쓰며 소비활동을 해야 한다.
내가 그 시스템의 구성원일 경우, 시스템에 대한 비판이 정당성을 얻기 위해선 내가 희생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희생될 생각이 없다. 전혀 없다. 바로 이것이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성공하기 힘든 이유이다. 스스로는 양질의 일자리, 더 높은 임금, 더 많은 소비,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를 추구하면서(이 얼마나 자본주의적인 행동인가), 남의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으니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경제는 상호의존적이다. 내가 수출을 많이 하려면 수입도 많이 해야 하다. 옛날처럼 수출은 많이 하고 수입은 적게 하는 게 미덕인 시대가 아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려면 그만큼 돈을 많이 쓸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 소비문화인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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