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일본을 ‘불쌍한 야구왕국’이라고 했는데, 일본의 우승으로 이 말이 힘을 잃게 되었다. 여전히 불쌍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일본 야구의 수준은 확실히 높았다. 한국도 비록 5:3으로 지기는 했지만, 결승전에서 이번 대회 첫 연장전까지 가며, ‘라이벌’, ‘숙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경기내용을 보여줬기 때문에, 단순히 졌다고 통탄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지난 번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제2회 WBC 준우승, 한국 야구의 힘을 세계에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최근 열린 야구 국제대회에서 모두 한국과 일본이 우승함으로써, ‘야구 = 미국’이라는 공식도 흔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국제 대회가 끝나면, 승패에 상관없이 항상 찜찜한 기분이 드는데, 그 이유는 무얼까... 이번 WBC 대회 이후에도 왠지 지금까지 많이 들었던 ‘진부한’ 대사를 또 듣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건 바로... ‘국내 프로 리그 경기에도 많은 관심 가져 주세요’라는 대사...
마침 요즘이 일본어학교 봄방학 기간이라서, 결승전 경기를 느긋하게 TV로 볼 수 있었다. WBC는 TBS(결승전: 36.4%, 제2라운드 한일전: 40.1%)와 아사히 TV(제1라운드 한일전: 37.8%)에서 방송했는데, 높은 시청률로 재미를 톡톡히 본 모양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결승전과 같은 시간대에 NHK에서 고교야구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관중석이 거의 꽉 찼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프로 야구경기도 관중석이 텅텅 빌 때가 많은데, 일개 고교야구 경기를(결승전도 아닌데) NHK에서 생중계하고, 꽉 들어찬 관중석! 그리고 오늘자(3월 24일) 아사히신문을 봐도, 고교야구 기사가 2개 면을 차지했다. 고교야구보단 더 잘 보이고 큼지막하게 게재되었지만 WBC 기사도 2개 면이었다.
WBC 결과만 놓고 보면, 한국과 일본의 야구는 대등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저변을 이루는 고교야구, 그리고 유소년 야구(리틀 야구)는 결코 ‘대등한’ 수준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 고교야구가 일본보다 실력 면에서 떨어지진 않는다. 오히려 실력이 더 높다.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야구 연습만 하는 반면, 일본의 고교야구는 클럽 형태이기 때문에, 학교 수업은 수업대로 하고, 그 이외의 시간에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선수가 아니면 일본에서 학생이 수업에 참석하지 않고 운동연습만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일이 비단 야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스포츠도 비슷하다. 우리나라 체육은 기본적으로 ‘엘리트체육’이기 때문에, 소수의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일반인들과 격리(?)되어 집중 훈련을 받는다. 운동 하는 놈 따로 있고, 구경하는 놈 따로 있는 구조이다.
반면 일본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선진국은 ‘생활체육’의 형태이다. 체육을 하는 무수히 많은 일반인 속에서 프로 선수가 탄생한다. 자신과 같은 교실에서 수업 받던 놈이, 같은 동네에서 운동하던 놈이 경기에 출전하기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로(우리 동네 행사로) 느끼고 관심을 많이 갖는다. 고교야구 관중석이 꽉 찬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히 같은 학교 학생들과 선수들의 학부모만으론 이런 관중석 장면이 나올 수 없다. 또한 그들 중에서 프로 선수가 나오기 때문에, 선수와 팬들의 거리가 친밀하고 가깝다. 우리나라는 어떤 스포츠든 관중석을 보면 왠지 허전한 느낌이 드는데, 그 차이는 여기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소수의 선발된 엘리트들이 체육을 하는 이런 형태는, 대개 못사는 나라가(돈과 인프라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할 수 없으므로) 선진국의 스포츠를 따라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채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이 못 사는 나라는 아니지 않은가? 거품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이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과 경기할 때만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려 하고, 다른 때는 한국을 형편없는 나라, 못 사는 나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대한민국... 그렇게 힘없고 작은 나라는 아니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좋아도, 항상 뭔가 허전한 느낌이 있었다.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 2002년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했을 때도 뭔가 뒷맛이 게운하지 않았었다. 그건 바로 월드컵 때 보여줬던 뜨거운 관심이 프로 축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순서가 거꾸로 된 것이다. 원래는 프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것이 넘치고 넘쳐서 월드컵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하려고 했다. 물론 그런 전략이 성공할 리 없다. 그래서 인기 있는 국제대회가 끝나면, 늘 관계자들이 ‘제발 국내 경기에도 관심을 가져 주세요!’라고 어이없는 하소연을 한다.
이번 WBC 결승전에서 기왕에 일본에 졌으니까(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졌다는 것은 상대팀보다 우리가 한 수 아래라는 뜻이다. 스포츠에서 졌다고 열등감 가질 필요는 없어 보이고, 상대팀에서 뭔가 배울 점을 찾아서 우리의 약점을 고치면 된다. 일본 야구에서 정말로 배울 점이 어디에 있을까? 나는 그 답이, 일본의 프로 야구에 있지 않고, 고교 야구와 리틀 야구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렇게 생활 속 깊숙이 숨어 있는 일본의 경쟁력을 찾고 배우는 것이 일본유학의 멋(?)과 맛(??)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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