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호(河口湖)에서 바라 본 후지산
정상 부근이 구름으로 덮여 있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큰 맘 먹고 후지산에 갔다. 날씨 맑은 날에는 도쿄 도심에서도 보이는 후지산이건만, 직접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 그리고 정상까지 올라가기 위해선 체력도 좋아야 하지만, 그 전에 운이 따라야 한다. 정상 부근은 날씨가 들쭉날쭉하기 때문이다.
후지산에 직접 올라가 본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이름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해발 3,776미터로 일본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이다. 나는 또 다른 의미에서 ‘후지산’이란 이름이 무척 익숙하다. 내가 과수원집 아들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사과의 70% 정도는 후지(富士)라는 품종이거나 혹은 그 변종이다. 한자를 우리나라 발음대로 읽어서 ‘부사’라고 부를 때도 있지만, 아무튼 이 사과 품종은 후지산에서 따온 이름이다.
도쿄에서 후지산에 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은, 신주쿠역(新宿駅)에서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다. 여름 기간에만 운행하는 ‘홀리데이 쾌속(ホリデー快速)’이란 녀석이 있다. 아침 8시 14분에 출발하는데 10시 20분에 가와구치호(河口湖) 역에 도착한다. 가장 빠른 전철인데도 2시간 걸린다. 문제는 이 전철은 토요일과 휴일에만 운행한다. 나는 평일에 갔기 때문에 그냥 전철을 갈아타며 갔다. 3시간 반쯤 걸렸다^^; 왕복티켓 가격은 4,500엔이다.
전철을 갈아타며 가는 방법은, 신주쿠 -> 다카오산(高尾山) -> 오오츠키(大月) -> 가와구치호 순으로 찾아가면 된다. 오오츠키역에서 갈아타는 전철이 ‘후지큐코(富士急行)’라는 그 이름도 유명한 전철이지만, 막상 가서 보면 시골역을 오가는 조그만 전철이다. 그것도 선로가 하나뿐인 단선(単線)이라서, 맞은편에서 전철이 오면 역에서 잠시 멈췄다 가야 한다.
후지산 주변에 있는 5개의 호수를 후지고코(富士五湖)라고 부른다. 크기 순서대로 적어 보면 야마나카호(山中湖), 가와구치호(河口湖), 모토스호(本栖湖), 사이호(西湖), 쇼지호(精進湖)이다. 보통 가와구치호 역에서 내려, 후지등산버스(富士登山バス)를 타고 후지산 중턱쯤 되는 고고메(五合目)에 간다. 이것도 50분쯤 걸리고 요금은 왕복 3,000엔이다. 물론 역에서부터 걸어서 가도 되는데, 등산에 미친 사람이 아니면 밑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호수 주변도 경치가 좋고 볼거리가 많기 때문에, 결국 후지산 관광도 등산파와 非등산파로 나뉜다. 산중턱까지만 버스로 올라갔다 내려오고 나머지 시간은 호수 주변에서 보내는 사람들과, 무슨 일이 있어도 정상까지 올라가는 사람들... 그리고 후지산 근처에는 호수 외에도 놀이터(?)가 하나 더 있다. [후지큐 하이랜드]라는 리조트도 있다. 여기에는 ‘절규’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탈것이 많아서,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나는 본격적인 등산파는 아니지만, 아무튼 원래 계획은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비와 복장이 어중간했다. 비가 올 것을 예상해서 나름대로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추웠다. 호수 주변을 둘러 볼 때는 35도쯤 되었는데, 고고메(五合目)는 기온이 20도였다. 정상 부근은 훨씬 더 추워보였다. 그리고 밑에선 쾌청한 날씨였는데, 산중턱부터 정상까지는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정상까지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척 망설여졌다. 결국 한여름에 얼어 죽는 사태가 발생할 것 같아서 포기했다. 비옷을 챙겨가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옷을 너무 얇게 입었다. 그리고 비 맞으면서 올라가기엔 왠지 처량한 느낌도 들었고... 준비부족을 탓하며 그냥 내려 왔다.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다면, 그 땐 ‘완전군장’을 메고 갈 생각이다. 해발 3,776미터짜리 산을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것 같다.
※2010.07.28
▲▼빨간색의 쪼그만 녀석이 후지큐코(富士急行) 전철
▼고고메(五合目)
▲산속에 우체통이 있다. 모형이 아니라 진짜 우체통이다. 후지산 소인이 찍힌 편지나 엽서를 받으려고, 기념품 가게에서 엽서 사서 자기 집 주소로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일본∽나들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닛코, 이로하자카, 게곤폭포 (도치기현) (0) | 2011.08.20 |
---|---|
아케노 해바라기밭(야마나시현 호쿠토시) (0) | 2011.08.16 |
쓰쿠바(筑波) 버스 투어 (0) | 2009.11.29 |
도쿄 이타바시 하나비 대회 (0) | 2009.08.02 |
오다이바(お台場)의 건담 실물 모형 (0) | 2009.0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