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일상다반

취학비자에서 유학비자로 ‘승진’

페이퍼컴퍼니 2010. 3. 8. 10:15

 

엄밀히 말해서 나는 그동안 ‘유학생’이 아니라 ‘취학생’이었다.

 

취학생(就學生)... 일하면서 공부한다는 의미니까, ‘근로학생’ 정도의 신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일본에서 알바 하나 안 하는 유학생은 거의 없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로 구분하는 건 아니고, 어디에서 무슨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구분한다.

 

취학비자(就学ビザ)는 일본어학교란 곳에 다니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비자의 한 종류이다. 전문학교나 대학/대학원이 유학비자이다. 어차피 공부하는 건 똑같은데, 굳이 비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일본어학교 1년 반 다녀본 결과, ‘꼭’ 구분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어학교란 곳은 쉽게 말해 ‘초등학교’ 같은 곳이다. 학생들 의식 수준도 초딩이고, 배우는 내용도 초딩이다. 일본의 일반사회나 고등교육기관(대학 등)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본어 실력을 함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배우는 내용은 일본의 일반적인 초등학생들이 배우는 ‘국어’와 비슷하다. 다만 압축해서 집중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학습 기간이 짧을 뿐이다. 그리고 국어(일본어) 이외의 과목은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자기 나라 학교에서 배웠다는 전제 조건을 깔고 있을 뿐이다.

 

일본어학교는 최대 2년간 다닐 수 있는데, 정상적으로 공부하면 2년 뒤에 중/고등학생 정도의 어학 실력이 된다. 물론 이건 이론상 그런 것이고, 실제론 초등학교 5~6학년에서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언어 능력이 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경험’이 부족해서 언어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2년간 열심히 학교 댕기며 공부하면, 일본의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할 어학 실력은 된다.

 

그런데 일본어학교의 존재 의미가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어 공부를 목적으로 다니는 사람도 물론 많지만, 단지 일본에 체류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많다. 왜냐하면 일본어학교란 곳이, 전문학교/대학에 비해 입학도 간단하고(돈만 내면 입학할 수 있음) 학비도 저렴하고, 일본 체류 비자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는 뒷전이고, 아르바이트를 더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많다. 최근엔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력 차이가 예전만큼 크지 않아서, 일본에서 아무리 열심히 알바를 해도 목돈을 벌긴 힘들지만, 조금 창의적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버는 학생들도 꽤 많다. 그리고 동남아나 제3세계 국가 출신은 평범한 알바라도 자기 나라로 송금하면 목돈이 되기 때문에, 역시 공부보단 일에 집중하는 경우가 꽤 있다.

 

요즘엔 일본 대학들도 학생수 부족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명문사립대학이나 학비가 비교적 저렴한 국립대학이 아니면, 입학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래서 공부에 별 뜻이 없는 사람들도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대학과 전문학교는 최소한의 검증 작업은 거치고 학생을 받기 때문에 유학비자를 발급해도 된다.

 

하지만 일본어학교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차별을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두 비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체류기간일 것 같다. 취학비자는 기본 1년(1년치 학비를 낸 경우)이고, 유학비자는 해당 학교의 학업기간에 맞게 정해진다. 일본어학교는 90일짜리 관광비자로 다니는 경우도 있다. 90일 학교 다니다 다시 본국에 갔다 재입국하는 방법이다. 어차피 공부를 할 목적이라면 정식으로 비자를 받고 다니면 될 것을, 왜 그리 귀찮은 짓을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가지만, 뭔가 사정이 있나 보다.

 

일본어학교도 숫자가 많다보니(도쿄에만 150개 가까이 있다), 건실한 학교가 있는 반면 개판인 학교도 많은 것 같다. 유학원에서 학생 1명 보내면 학교로부터 수수료로 10만엔 정도 받는다. 그러니 유학원에선 무조건 학생을 많이 모집해서 어학교로 보내려 하고, 어학교 입장에서도 학생 많이 받으면 수입이 늘어나서 좋은 거고... 그리고 일본어학교란 곳이 원래 고도의 전문지식을 배우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초적인 언어능력을 배우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고 비판할 순 없다.

 

일본어학교에선 출석률이 중요하다. 그만큼 학교 안 나오는 인간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기 공부하려고 학교를 다니는 건지, 출석률 때문에 다니는 건지, 한심한 상황을 많이 보게 된다. 아무튼 출석률이 80% 이상이면 비자와 관련한 업무를 학교 사무실에서 해 준다. 80% 이하면 왜 출석률이 나빴는지 소설(?)을 써서, 서류 전부 싸들고 직접 입국관리국에 가서 신청해야 한다.

 

나는 출석률이 99.9%이기 때문에 학교 사무실을 통해서 비자 변경을 했다. 지금까지 입국관리국에 가본 적이 없는데, 이참에 구경도 하고 경험삼아 직접 해 볼까 생각도 했지만,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학교를 통해서 했다. 학교를 통해서 신청하는 게 절차가 간단하고 쉽게 통과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달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빨리 끝났다. 취학비자에서 유학비자로 바꾸는 데 2주도 안 걸렸다.

 

조금 흥미로웠던 점은 한국인의 경우 ‘송금증명서’가 필요 없었다는 점이다. 유학비자를 신청할 때 학비와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하는지 적어야 하는데, 형식적이긴 하지만 본국에서 돈을 송금 받는다고 써야 한다. 대부분 알바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충당하지만 그러면 안 되고, 매월 몇 만엔 정도의 돈을 본국에서 송금 받고 있으며, 거기에 자기가 일해서 번 돈을 보태서 공부한다고 쓰는 게 서류가 쉽게 통과되는 지름길이다.

 

따라서 그걸 증명하는 송금증명서를 첨부해야 하는데, 한국인의 경우는 예외이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의 학생들은 반드시 송금증명서를 첨부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인지, 학교를 통해서 신청하는 한국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송금증명서를 위조(?)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비자의 체류기간이 1년, 2년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학교에 다니는 기간이어서, 유학생들이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이나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하거나, 미리 입국해서 준비하거나 공부를 끝내고 일본생활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다. 하지만 요즘엔 3개월 정도 플러스해 주는 것 같다.

 

취학비자에서 유학비자로 무사히 ‘승진’도 했고, 이제 일본생활도 [시즌2]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