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일상다반

거지 탈출

페이퍼컴퍼니 2010. 2. 18. 06:37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최근 2주 동안 무척 쪼들리며 살았다. 정말로 100엔짜리 동전 하나가 아쉬웠다. 마지막 순간 내 주머니에 들어 있던 돈의 총액은 100엔짜리 3개랑 10엔짜리 몇 개였다^^;; 설상가상이라고, 꼭 이렇게 돈이 궁할 때 월급이 늦게 나온다. 원래 전 달 일한 돈을 15일에 받는데, 지금까지 제 날짜에 꼬박꼬박 잘 나오던 월급이 하루 늦춰져서 16일에 나왔다. 겨우 하루 차이였지만, 하루만 더 늦어졌어도 차비가 없어 학교에 못 가고(정기권 사용기한이 16일까지여서 이날 충전을 해야 했다) 밥 굶을 상황이었다.

 

다행이 16일에 월급도 잘 나왔고, 장학금도 통장에 들어와서 숨통이 트였다. 최근 이렇게 돈에 쪼들린 이유는, 4월부터 다닐 전문학교의 1년치 학비를 냈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학비는 기본적으로 1년치를 미리 내야 입학이 가능하다. 특히 유학생의 경우는, ‘신용’을 상실한지 오래되어(학교를 다니다 돈 안 내고 도망가는 놈들이 많아서) 학비를 선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입학허가증도 안 나오고, 비자 연장이나 변경도 안 된다.

 

일시적이긴 했지만 극도로 돈에 쪼들린 덕택에 [돈]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돈이 없어 아무데도 놀러 갈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인생의 목표를 돈에 둔 적이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돈을 좇는 삶은 안 살 것으로 생각한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열정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스스로는 돈에 종속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순이 아니다.

 

요즘 한국이나 일본이나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인데, 그 경제가 왜 어려워졌는지, 또 어떻게 살릴 것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하토야마(鳩山) 정권의 슬로건 중에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コンクリートから人へ)’라는 것이 있다. 정부 예산집행의 시선을 건설공사(물질)에서 사람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비록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점도 많지만, 그 기본 사상은 무척 마음에 든다.

 

하토야마가 경제발전을 등한시해서 건설공사에 쓸 돈을 육아수당이나 인재개발로 돌리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로 경제성장을 이끄는 것이 한계에 이르렀고, 최근에 쓸데없는 토목공사로 예산 낭비도 많아졌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방식을 근본부터 바꾸려는 시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 민주당이 전 정권인 자민당보다 똘똘한 것 같다.

 

하토야마 정권은 정치적 마인드는 좋은데 추진력이 없다고 비판받고 있다. 반면 한국의 이명박 정권은 마인드는 나쁜데 추진력만 좋은 것 같다. 건설회사 출신 대통령이라서 그런지 여전히 경제문제의 해법을 20세기의 건설공사 현장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 이명박은 문제의 원인을 해결책으로 생각하고 있어서 무척 걱정스럽다. 외국에서 원전공사 수주하는 것도 좋고, 4대 강에다 뭐 만드는 것도 좋고, 건물 짓는 것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철학(내용물)이 없다. 건물 지으면 일자리 늘어나서 실업률 줄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까진 생각하는데, 그 건물로 무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없다.

 

사실 대통령 욕할 것도 없다. 경제가 이렇게 된 책임은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있고, 그것이 집약된 사람이 이명박이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지금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허나 월급이 2배 늘어났다고, 하루 세 끼 먹던 사람이 여섯 끼 먹을 수 없듯이,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정말로 경제가 어려워진 것인지, 물질적 낭비가 심했던 시대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비자본주의]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다. 2천 년도 더 전에 노자(老子)도 지적했던 개념(사상)이고, 최근에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지적하고 있는 점이다. 토플러는 훌륭한 자본주의가 성립하려면 그 밑바탕에 훌륭한 시민사회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경제가 어려운 게 아니라, 그 경제를 지탱하는 시민사회가 붕괴되고, 문화가 빈약하고, 정신이 공허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