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는 녀석

강의석, “태환아, 너도 군대가”에 대해서

페이퍼컴퍼니 2008. 9. 7. 23:37

 

강의석 군(이제는 ‘~씨’라고 불러야 하나?!)이 간만에 다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내용 자체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는 군복무 문제인데, 대학생 신문에 기고한 글의 제목이 너무 멋있어서(?) 세간의 관심을 끈 것 같다. 대학내일 434호에 ‘태환아, 너도 군대가’란 제목으로 기고를 하였는데, 내가 봐도 훌륭한 제목이다. 베이징올림픽이 막 끝난 시점에 올림픽 스타의 군복무 면제 문제와 군대제도 자체를 비판한 것은, 일단 나와 사상이 다른 건 둘째로 치고 시의적절한 제목짓기와 훌륭한 글솜씨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 시절 학내 종교자유를 외치며 1인시위를 펼치다 퇴학당해 유명해졌다. 나 역시 그 때 처음 이 친구 이름을 뉴스에서 들었고, ‘종교 없는 세상’을 추구하는 내 입장에선 당연 강의석 군의 그런 행동을 지지했었고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 친구는 대학생이 된 이후에 저항의 대상이 종교에서 군대로 바뀐 것 같다. 나 역시 군대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므로 군대를 비판하는 것 자체로는 나와 충돌할 일이 없는데, 이 친구와 나는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 나는 군대의 ‘개선’ 혹은 ‘개혁’을 원하는데, 강의석 군은 군대 자체의 폐지를 원하는 것 같다.

 

이번에 대학내일에 기고한 글에서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군복무 면제를 비판한 것까지는 사실 나와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군복무를 면제하는 기준에(프로 야구선수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려는 목적이 군면제라고 공공연히 떠벌리는 이 한심한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나도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친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기고문의 최종 목적도 결국 군대가 불필요하고, 군대가 오히려 폭력을 조장하므로 젊은 친구들에게 함께 군대를 거부하자는 것이 요지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상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이므로 군대를 없애는 것이 현실성이 있냐 없냐로 크게 따질 생각은 없다. 그렇긴 하지만 간략하게만 집고 가자.

 

이 세상에서 군대를 없애는 것은 당연히 현실성이 없다. 군대를 없애자는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감시할 조직, 어떤 국가가 군대를 없애자는 약속을 어겼을 경우 그것을 컨트롤할 수 있는 군대보다 더 힘 센 조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 국가들이 군대를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자신 해산하길 바라는 것은, 조폭들이 스스로의 양심에 따라 자진 해산하길 바라는 것과 같다. 정말로 이 세상에서 군대가 없어지길 바란다면 괜한 이념논쟁을 하지 말고, 군대를 없앨 구체적인 전략/전술(앗! 군사용어...)을 연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군대가 폭력을 조장하므로 필요없다는 주장은 비단 강의석 군만이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자칭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정말로 그런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자칭’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우선 확실하게 집고 넘어갈 중요한 문제가 있다. 군대가 폭력을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폭력’ 그리고 ‘평화’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고 가야 한다. 우리는 평소에 별 생각없이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사실 그게 어떤 세상인지 깊이 생각하진 않는 것 같다. 정말로 어떤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일까? 전쟁이 없는 세상이 평화로운 세상일까? ‘평화’를 정의하기는 의외로 어려운 문제이다.

 

전쟁은 없지만 기아에 허덕이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일까? 전쟁은 없지만 자연재해와 질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일까? 중세유럽에선 전쟁이 아닌 전염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는데, 이건 전쟁 때문이 아니니까 그저 평화로운 사건이었을까? 올해 중국 쓰촨성에선 지진으로 수만명이 죽었는데 이건 인위적인 폭력 때문이 아니니까 자연법칙(!)으로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까?

 

전쟁도 없고 굶어 죽을 염려도 없지만, 빈부격차가 심한 세상은 평화로운 세상일까?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을 당할 가능성도 낮고 굶어 죽을 가능성은 더더욱 낮고, 또한 인터넷으로 글을 읽을 수 있으니까 어느 정도 고등교육도 받았으니까,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너무 깊이 따지고 들어갈 생각은 없지만, 이 기회에 평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다음으로 ‘폭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물리적 힘을 가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폭력의 원시적인 형태이다. 주먹으로 때리고 칼로 찌르고 총을 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언어폭력, 정신적 스트레스, 허위사실유포 등으로 인한 명예훼손 등은 물리적 폭력 이상으로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경우가 많다. 환경오염으로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서서히 병들어 가는 것도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자살하고 배반하고 싸우는 것은 전쟁이나 군대와 상관이 없지만 매우 폭력적인 일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선 필연적으로 폭력이 발생하며, 이 폭력을 컨트롤하는 조직이 바로 경찰과 군대이다. 경찰은 내부의 폭력을, 군대는 외부의 폭력에 대항한다. 모든 조직은 기본적으로 성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군대가 조직을 확대하고 힘을 키우는 방법은 외부에 적을 만들어서 무찌르는 것이다. 강력한 군대가 전쟁을 억제하여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군대는 전쟁을 억제하기도 하지만 전쟁을 추구하기도 한다.

 

따라서 군대가 있어서 전쟁이 확대재생산된다는 말에는 (조금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어느 정도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군대가 있어서 전쟁이 발생하므로 군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군대가 없으면 전쟁과 폭력이 없어진다는 논리가 성립되어야 하는데 그렇진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비록 폭력 자체는 막을 수 없지만 군대가 없으면 많은 사람이 죽는 전쟁 자체는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이것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혼동이다. 군대는 전쟁의 원인이라기보단 결과에 가깝다. 전쟁의 원인은 군대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더 많은 자원을 차지하려는 욕심, 자신의 종교를 확대시키려는 욕심, 더 많은 권력과 부(富)를 향한 욕심 때문에 전쟁이 생기는 것이고, 군대는 단지 그런 욕망에 사용되는 도구일 뿐이다. 정말로 전쟁을 없애고 싶다면 군대 자체를 걸고넘어지지 말고, 그런 자원, 종교, 권력, 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 적절히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게 좋아 보인다.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는다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에 가깝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풍부한 식량, 에너지, 공산품 등등)의 뒤에는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녹아 있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움 자체가 폭력과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내가 직접 총으로 사람을 쏴 죽이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그런 방법으로 획득한 석유로 자가용을 몰며 한가로이 휴가를 떠나는 우리의 모습도 결코 평화라고 부를 순 없다.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이런 사실에 대해 자각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군대 자체를 타겟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사실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 스스로는 누릴 것 다 누리면서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다.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말에는 상당한 용기가 굳은 각오가 필요하다. 그것은 풍요로움을 포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총을 들고 안 들고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표피적인 문제이다. 군대는 전쟁을 수행하는 곳일 뿐, 전쟁의 원인은 군대 바깥에 있다.

 

 

※아래는 대학내일 434호에 실린 강의석 군의 “태환아, 너도 군대 가” 글 전문

 

마린보이, 안녕! 초면인데 반말해서 미안. 너도 편하게 “바보야”하고 부르렴.

 

난 자칭(!) ‘영화감독’ 강의석이야. 비록 내 영화는 CGV에서 두 번 상영되고 막을 내렸지만, 2009년 2월 완성될 블록버스터 다큐 ‘군대?’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예정이지. 그렇게 되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국위선양’의 이름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나는 그 혜택을 거부하고 감옥에 갈 생각이야. 그로 인해 1년 6개월 동안은 영화를 못 만들게 되고 또 혹시 모르지. 감옥에서 광우병 쇠고기 먹고 뇌송송 구멍탁 죽어버릴지.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22명이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어. 5만 달러의 포상금, 죽을 때까지 매월 100만원 이상의 연금이 주어지는 것과 동시에 말야. 태환아, 너는 한국 야구가 세계 정상이 되는 순간을 지켜봤니? 난 ‘한국에서 어떻게 군대를 없앨까’ 밤샘 회의를 하던 중,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야구 금메달”이란 문자를 받고서야 알게 됐어(나도 팬이 많거든^^). 전승 우승하는 과정에서 승엽이 형은 ‘병역면제브로커’란 별명을 얻었고, 대호 형은 “아무래도 병역혜택이 걸린 준결승이 더 떨렸다. 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은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밝히며 기뻐했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노력해서 딴 메달이 ‘징병면제’란 이름으로 선수들의 공적을 위한 하사품이 된다는 거야. 군 면제를 서비스로 받는 올림픽 선수들을 보고 있으면 로마시대 상대를 죽이면 자유민으로 풀어주는 노예 검투사가 떠오른다고 할까. 게다가 무엇이 국가의 명예를 높이는 것인지 그 ‘기준’도 불분명하고, 설령 국위선양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병역특례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해할 수 없어. 일반인보다 전투력이 몇 배 센 태권도 금메달리스트가, 힘을 써야 할 군대에서 빠진다니 말도 안 돼!

 

헤어살롱에서 ‘GQ’ 8월호를 보니 네 친구 원더걸스가 나오더라. 해이해질 때마다 진영이 오빠가 바로 잡아준다며, “군대도 아닌데 좀 ‘빠지면’ 어때요?”라는 질문에 “아니에요. 군대만큼 중요해요”라고 답하던걸. 그걸 보고, 군대 자체가 중요한 조직과 직무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고, 그것이 일상적으로 용인되는 우리문화를 생각하면서 머리 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 (그래도 소개해 주면 감사할게^^;).

 

군대? 넌 군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난 폭력을 막기 위함이란 이유로 포장된 군대로 인해 이 세상에 더 많은 폭력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 평화를 위해서는 전 세계에서 군사제도가 사라져야 하고, 그 변화를 위해 나와 친구들이 군대 대신 감옥 가기 100인 캠페인을 하고 있는 거야. 지금까지 18명이 모였는데 네가 19번째 사람이 되어, 10월 1일 국군의 날에 “비무장은 아름답다!”는 누드 시위를 함께 해 보지 않겠니?

 

“잘생긴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는 헌법 조항이 있더라도 그 누구도 너와 나를 죽일 수는 없는 것처럼, 헌법 앞에 사람이 있지. 그런데 헌법도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어. 수많은 청년들에게 원치 않는 병역의무를 강요하는 건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제10조를 무시하는 거고, 올림픽 선수와 일반인을 차별하는 것은 헌법 제11조 ‘법 앞의 평등’을 깨버리는 거지. 태환아, 공익요원들이 20만 명이나 되어야 하는 이유를 너는 아니? 툭 까놓고 내가 2년 군대에 있었으니 너도 2년 낭비해야 한다는, 병역특례고 뭐고 태환이 너도 군대 가고, 여자도 군대 가라는 푸념 아닐까? 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에 내 소중한 삶을 낭비하기 싫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너도 소중하지만, 나도 딱 너만큼 소중한 사람이라는 거. 단지 그거 하나야. 참, 일촌신청 했는데 받아주렴 ^^ 술 고프면 문자 하나 보내고~♬

 

▶학생논단의 글은 본지와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