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하는 녀석

노인과 종교가 정치판을 기웃거릴수록…

페이퍼컴퍼니 2008. 3. 21. 11:39

노인과 종교가 정치판을 기웃거릴수록…

 

못사는 나라, 못사는 지역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노인과 종교가 정치판에서 활개를 친다는 점이다. 종교와 노인이 분리가 되면(종교지도자의 연령이 젊거나 등등) 그나마 다행인데, 대개 이런 나라에서는 노인들이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을 함께 거머쥐고 젊은이들을 ‘성스러운 이름으로’ 희생시키고 있다.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최악의 상황까지는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18대 총선을 앞둔 충북의 모습을 보니, 최악의 상황 언저리를 향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일단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부터 거론을 하면, 평화통일가정당이 충북의 모든 선거구에서 후보를 내며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대한민국에서 ‘통일’이란 단어가 단체명에 사용되면 십중팔구 남북통일 관련 단체이거나 통일교 관련 단체이다. 물론 평화통일가정당은 통일교 계열이다. 본인들은 종교를 초월하여 말 그대로 가정이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뻥을 치고 있지만, 그걸 누가 믿겠는가? 이건 종교적 목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정치권에 진출하겠다는 선전포고인 셈이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을 해 보라. 기독교나 불교 쪽에서 그런 정당을 만들어서 선거에 뛰어들면 통일교 쪽에선 순순히 믿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정교분리국가란 기본적인 상식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 아니 그 사람들도 배울만큼 배운 똑똑한 사람들인데 모를리 없다.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종교에 눈이 멀면 이렇게 편협해 진다.

 

통일교는 이미 지난 2004년 총선에서도 세계평화가정통일당을 창당해서 후보를 한명도 당선시키지 못해 당이 해체된 경력이 있다. 아마 이번에도 똑같이 될 것이다. 아까운 돈과 시간 낭비하며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나같은 중생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지지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그냥 해프닝으로 생각하자. 이번에도 당선자는 없을 것이므로, 다원화된 사회의 한 단면으로 여기고 웃으며 넘어가자.

 

그런데 충북 정치판에서 노인문제(?)는 조금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이회창 총재의 자유선진당이 충청권을 발판 삼아 전국 정당이 되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데, 내 귀에는 충청권을 짓밟고 전국 정당이 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 자유선진당 같이 지지율이 낮은 신생정당은 철새정치인이 가기에 딱 좋은 곳이다. 아니다 다를까 주요 정당 공천경쟁에서 탈락한 철새들이 많이 날아가고 있다.

 

충북에서도 거물급 철새 한 마리가 자유선진당으로 날아 갔다. 통합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됐던 이용희 국회 부의장이 3월 17일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 그것도 혼자 입당한 게 아니라 옥천, 영동, 보은 군수 3명과 도의원 1명, 군의원 12명 등과 동반으로 입당했다. 이용희 의원이 입당하면서 했던 말이 가관이다.

 

“선진당과 이념적으로 거리가 있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사실 극우, 진짜 보수이다. 그동안 진보 세력으로 몰린 것이 서운하다.”

 

그동안 이용희 의원을 진보 세력으로 몰았던(?) 수많은 유권자들이 들으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이용희 의원도 문제지만, 함께 입당한 철새들도 문제가 크다. 이건 아예 대놓고 ‘우린 이용희 오야붕의 꼬붕입니다’라고 만천하에 선언하는 일이다. 이런 꼬붕들이 충북 남부 3군의 군수를 하고 있으니, 이 지역이 발전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유선진당의 쌍두마차 이회창은 72세, 심대평은 67세! 그리고 충북의 이용희는 76세! 이 정도면 ‘자유선진당’이 아니라 ‘노인선진당’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될 것 같다.

 

평균 연령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평생 한 직장에서 한 가지 일만 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은 아니다. 따라서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은퇴해야 한다거나 뒤로 물러나라는 요구는 부당할 수 있다. 또한 건강관리를 잘 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최소한 이회창, 이용희 두 사람에 대해서 건강관리를 잘한 점과 높은 열정을 뿜어내는 점은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그래도 이 사람들은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오래전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잘 나가던 때에 획득한 권력을 노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그리고 유지하려고 온갖 추잡한 방법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즉, 권력의 고착화란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이용희 씨가 그동안 다른 일은 하다 새로운 뜻을 품고 76세란 고령에 국회의원에 처음 ‘도전’하는 것이라면 굳이 비판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새로운 성을 쌓는 것도 아니고, 이미 쌓은 성을 더 튼튼하게 보강하는 일도 아니다. 성을 지켜야할 새로운 젊은 장수가 나오질 못하게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그저 한 번 쥔 권력을 놓기 싫어서 안달하고 있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 이용희 씨 정도의 지위와 권력을 가졌던 사람은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심지어 아무런 직책이나 지위를 갖지 않더라도 지역 사회에서 얼마든지 존경받는 어른으로 살 수가 있다. 만약 그가 적당한 시점에서 후배에게 길을 터주던가 아니면 직접 후배를 양성해서 중앙 정치권으로 보냈다면 훨씬 좋은 모양새가 되었을 것이고, 지역 사회 발전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지역사회에서 소외받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고 사회에 갈등이 생겼을 때 중간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존경받는 어르신이 되는 길을 버리고, 지역의 토호세력으로 남는 길을 선택했다.

 

지역사회에선 혈기왕성한 젊은 놈끼리 싸우고 중간에서 노인들이 말리는 모습이 제일 이상적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권력을 잡으려는 젊은 놈과 권력을 놓기 싫어하는 노인들이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말릴 사람이 없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말 그대로 노인들은 ‘어르신’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르신의 역할일까? 그것은 어르신 스스로의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시길… 젊은 놈이 어르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순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