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웅변대회(弁論大会)에서 1등 먹었다^^//
9월 11일(금), 제19회 아카몽카이 일본어학교(赤門会日本語学校) 웅변대회가 있었는데, 1등인 금상을 수상했다. 대회는 초급부문과 중/상급부문으로 나뉘어서 진행되었다. 학생이 1,000명이 넘어서 한꺼번에 호텔 행사장에 들어가기 힘든 점도 있지만, 초급반과 중/상급반은 실력 차이나 너무 크기 때문에 이렇게 나눠서 진행했다.
대회에 제출할 원고를 완성했을 때, 이 정도 내용이면 어쩌면 1등 할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웅변대회는 작문 실력을 겨루는 게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주장을 청중에게 잘 전달하느냐의 문제이다. 평소 말을 잘 안 하는 성격인지라 이 점이 조금 염려되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평소 잡담을 많이 하는 것과 수많은 청중 앞에서 말을 하는 것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중/상급부문의 마지막 참가자가 변론을 마쳤을 때, ‘1등이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원고 내용, 발음의 정확도, 목소리 크기, 표정과 자세, 모든 면에서 내가 앞섰다는 느낌이 들었다.
‘소심한 O형’인지라 한국에서라면 이런 대회에 나갈 생각도 안 했겠지만, 외국이라서 그런지 용감(?)해지는 것 같다. 대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물론 상금 2만 엔이 탐이 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현금이 아니라 백화점 상품권이었음), 그보다는 요즘 ‘사는 맛’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대회라도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일본생활도 이젠 익숙해져서 그런지 매너리즘이 오는 것 같다. 어제와 비슷한 오늘, 아마 내일도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 이러면 정말 위험하다^^;
웅변대회는 우선 각 클래스에서 예비 예선을 통해 1명을 뽑는다. 그렇게 통과한 사람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원고와 녹음한 테이프를 참고해서 대회에 나갈 사람을 선정한다. 중/상급부문 대회에는 최종적으로 13명이 뽑혔다.
클래스 예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제대로 된 원고를 써서 제출한 사람이 반 전체에서 사실상 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00자 원고지 4장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었는데, 다들 무성의하게 1~2장 대충 써서 제출했고, 그것도 원고 제출자가 너무 적어서 기한을 1주일을 넘겨야 했다. 아르바이트 쉬는 날 하루 종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원고를 쓴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관심 없어 하는 이런 대회에 나가서 뭐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대회에 나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인생을 대충 사는 사람들에게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스스로를 단련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선을 통과한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 비록 내가 1등을 하긴 했지만, 다들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2등은 한국인이, 3등과 학생들의 투표로 뽑는 특별상(인기상)은 중국인이 받았다. 일본어 발음과 목소리 면에선 확실히 한국 한생들이 중국 학생들보다 좋았다. 중국어의 특성 때문인지 중국 학생들의 일본어 발음은 어딘가 어색했다. 그리고 내용면에서도, 한국 학생들이 유머 감각과 위트(wit) 넘치는 표현 등이 좋았다. 중국 학생들의 발표 내용에는 감수성이 풍부한 우수(憂愁)에 넘치는 표현이 있었던 점이 좋았다. 만약 중국 학생들의 풍부한 감수성에 위트 있는 표현력이 더해졌다면 무척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별상을 받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生と死を越えた愛)’을 발표한 중국인 여학생은 목소리에 아쉬움이 남았다. 청중의 관심을 확 잡아끄는 ‘어안이 벙벙한’ 내용은 무척 좋았다. 삶과 죽음은 연결되어 있고, 죽음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안다는 내용으로, 중국의 옛날 시인의 글을 적절히 활용한 점도 좋았다. 하지만 목소리가 작고 발음이 부정확했다. 그리고 발표 내용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 중간중간 원고를 보면서 읽었던 점이 아쉬웠다.
3등도 중국인 여학생이 받았는데, ‘성냥갑, 갖고 왔습니까(マッチの箱、持ってきましたか)’라는 제목이었다. 고향을 떠나 일본에 올 때,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자신의 마을 모습이 마치 성냥갑처럼 작게 보였고, 그런 고향에서의 추억을 성냥갑에 담아서, 즉 마음속에 담아서 왔다는 내용으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외국 유학생활의 외로움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역시 발음에 문제가 있었다.
2등은 한국인 남학생이 받았다. ‘말하기 곤란한 이야기(いいにくい話)’란 제목으로, 자기 가게 자전거가 아니라, 실수로 옆집 가게 자전거를 타고 심부름 나갔다가, ‘자전거 절도범’으로 경찰에 잡혀 고초를 겪은 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표현했다. 일본에선 자전거에도 자동차처럼 번호가 매겨져 있어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 자전거 잘못 타다 경찰에 잡혔다는 유학생이 매년 한두 명씩은 나온다. 이 친구는 목소리도 좋았고, 적절한 제스처도 훌륭했다. 내용도 무척 재미있고 쉬워서 전달력도 높았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단순한 게 흠이었다. 경찰에 잡혀서 고초를 겪었고 나중에 점장이 와서 잘 해결해 주었다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특별했던 경험에, 조금 깊이 있는 내용을 덧붙였다면 어쩌면 이 친구가 1등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평가하기는 좀 거시기(!)하므로, 일본어 원고 원문과 그 번역문으로 대신한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보다 잘 했기 때문에 1등을 하긴 한 것이겠지만, 사실 긴장해서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어렴풋한 ‘느낌’만이 남아 있을 뿐...
▲ 실로 얼마 만에 받아보는 상장이던가^^; 상패는 이름을 새기기 위해서 회수해 가서 사진이 없다.
<<번역문>>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내 글의 핵심이기도 한, ‘설국(雪国)’을 번역하기가 무척 힘들다. 우리말과 일본어의 뉘앙스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雪国은 문장에 따라 ①설국, ②눈의 고장, ③눈의 나라 이렇게 다르게 번역했다.
마음속의 설국(雪国)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유명한 소설 「설국(雪国)」은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합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雪国)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여기서 말하는 국경의 긴 터널이란, 군마현과 니가타현의 경계에 있는 터널이다. 일본어에서 国이란 한자는 국가란 의미 외에도 마을, 고향이란 뜻으로 쓰일 때도 있다. 번역의 어려움이 느껴지는 순간...^^;)
저는, 이 새하얀 순백의 문구를 떠올릴 때마다, 왜 그런지 새카만 기분이 됩니다. ‘불황의 긴 터널을 빠져 나와도 눈의 고장(雪国)이 아니었다’라는 말이 연상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터널을 빠져 나와도 아름다운 눈의 고장이 기다리고 있지 않는 것일까, 내가 멈춰 서서 잠시 쉴 신호소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맙니다. 지금은 긴 터널을 통과해도, 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훨씬 더 길고 어두운 또 다른 터널입니다.
저는 시골 출신으로, 어릴 때에는 모두가 가난했습니다. ‘가난해도 가족끼리 오순도순 행복한 생활’과 같은 뻔한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본 속담)가난한 사람은 여유가 없다’는 말처럼 가난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의 한국은 그렇게 풍요롭진 않았지만, 고도경제성장기를 이루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부모님의 진부한 대사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면, 사치스런 삶까지는 안 되더라도 나름대로의 생활은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가 바로 눈앞까지 왔어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겨우 버블 경제의 터널을 빠져나왔을 무렵, 한국은 그 터널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터널 자체가 붕괴되어,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다, 그와 같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기나긴 수험지옥을 끝내고 대학에 가도, 그 다음은 더더욱 험난한 취활(就活, 일본의 신조어) 즉 취직활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두꺼운 벽을 부수고 취직을 해도 끝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자연스레 결혼해서 자연스레 아이를 낳았을 터인데, 지금은 그런 것조차 당연한 일이 아닙니다. 콘카츠(婚カツ)라고 하는 신조어까지 탄생할 정도로 이제 결혼은 제2의 취직활동이 되었습니다.
운이 좋아서 취직도 결혼도 완료! 그래서 눈의 나라(雪国)를 만날 수 있을까요? 아니요! 만날 수 있다니 터무니없는 얘기입니다. 정리해고 당하는 것은 아닐까, 그 전에 이 회사 괜찮을까, 아이들 교육비는, 주택대출금은 어떻게 해야 좋을까, 고민을 가득 실은 기차가 멈출만한 신호소(信号所)란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한 일입니다. 확실히 옛날에 비해 세상은 풍요롭고 평화로워졌는데, 어째서 그에 따라 행복해지지 않는 것일까요?
지금은 불황입니다. 저는 신문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신문에 이 말이 안 나오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세상은 바야흐로 대불황시대(大不況時代)입니다. 원피스의 루피가 대해적시대의 해적왕을 노리는 것처럼, 요즘 사람들은 불황왕(不況王)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대사 ‘세상은 바야흐로 대해적시대’를 패러디한 것임)
정말로 불황입니다. 하지만 경제적인 불황만은 아닙니다. ‘마음의 불황’입니다. 아무리 불황이라고 말해도, 일본은 변함없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입니다. 이런 나라가 불황이면 세상에 불황 아닌 나라가 어디에 있을까 의문입니다.
우리들이 극복해야만 하는 것은 마음의 불황(心の不況)이 아닐까요? 실은 우리들, 이미 눈의 나라(雪国)에 도착했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그것을 볼 마음의 눈(心の目)이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버블 경제를 직접 경험해 보진 못했지만, 그런 시대가 행복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마음이 무척 빈약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척 더웠던 여름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문배달을 하던 도중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제 일은 이런 때가 가장 괴로운데, 한 여름의 비가 그친 후 멀리 무지개가 보였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던 그 무지개를 본 순간, 아~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결코 가까이 다가가서 손에 넣을 순 없지만, 단지 지향할 수 있는 ‘인생의 목표’로서 존재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본어 원문>>
心の雪国
李 柄官(イ・ビョンガン)
ノーベル文学賞を受賞した川端康成の有名な小説「雪国」はこうゆう書き出しで始まります。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夜の底が白くなった。信号所に汽車が止まった。」
私は、この真っ白で純白な文章を思い出す度、何故か真っ黒な気持になります。「不況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ても雪国ではなかった」という文が連想されるからです。
どうしてトンネルを抜けても美しい雪国が待っていないのだろか、私が止まって一休みする信号所は一体どこにあるのだろうかと、ついため息をついてしまうのです。今は長いトンネルを抜けても、私を待っているのはもっと長くて暗い別のトンネルです。
私は田舎育ちで、子供の頃は皆が貧しかったです。「貧乏でも家族揃って幸せな生活」というきれい事は言いたくありません。「貧乏暇なし」の言葉どおり、貧しかったので幸せじゃありませんでした。
その時の韓国はそんなに豊かではなっかたものの、経済の高度成長を遂げつつある時代でした。それで先生と親の古いセリフどおりに勉強したら、贅沢じゃないけれども、それなりの生活はできました。
しかし時代の変化がすぐ目の前に来ているのを誰も気付きませんでした。日本がやっとバブルのトンネルを抜けた頃、韓国はそのトンネルに入りました。そして今はそのトンネル自体が崩れて、困難に打ち勝って成功する、そういう機会さえ与えられない状況です。
長い受験地獄を終えて大学へ行っても、その次はもっと厳しい就活つまり就職活動が待っています。その厚い壁を破って就職しても終わりじゃありません。
昔は自然に結婚して自然に子供を生んだはずだったのに、今はそんなことも当たり前じゃありません。「婚カツ」と呼ばれる新造語まで誕生するほど、もう結婚は第二の就職活動になりました。
運が良くて就職も結婚も完了。それで雪国に会えるんでしょうか。いいえ、会えることなんてとんでもないことです。リストラされるのではないか、その前にこの会社大丈夫かな、子供の教育費は、住宅ローンはどうしたらいいか、悩みの汽車が止まる信号所なんかありません。
考えてみると不思議なことです。確か昔に比べて世の中は豊かで平和になったのに、何故それに従って幸せにならないんでしょうか。
今は不況です。私は新聞配達のバイトをしていますが、新聞にこの言葉のない日はほとんどありません。世は将に「大不況時代」です。ワンピースのルフィが大海賊時代の海賊王を目指すように、今の人々は「不況王」を目指しています。
本当に不況です。しかし経済的な不況だけじゃありません。「心の不況」です。いくら不況だと言われても、日本は相変わらず世界第二の経済大国です。こんな国が不況だったら、一体世の中どこの国が不況じゃないか疑問でたまりません。
我々が克服すべきことは心の不況ではないでしょうか。実は私たち、もう雪国に着いたかもしれません。ただそれを見る「心の目」がないだけじゃないかと思います。
私はバブル経済を直接経験しませんでしたが、そんな時代が幸せだとは思えません。たぶんその時を過ごしていた人々の心がとても貧しかったと思います。
ある蒸し暑い夏の日のことです。新聞配達の途中土砂降りの雨に遭ったことがありました。私の仕事はこんな場面が一番苦しいですが、真夏の雨が止んだ後、遠くに虹が見えました。そのキラキラ光っている虹を見た瞬間、あぁ、幸せというにはこんなものじゃないかと思いました。
決して近づいて手に入れることはできませんが、ただ目指す「人生の目標」として存在する、それが幸せじゃないかと思い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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