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 9시 뉴스에서 연초를 맞이하여 특별 시리즈로 방영하고 있는 코너 중에 ‘무연사회(無縁社会)’라는 것이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 커뮤니케이션, 대화 즉, 연(緣)이 엷어지는 것을 넘어 없어지는(無) 사회로 변해가는, 일본의 현실을 심층 취재한 시리즈이다. 보통 이런 문제는 독거노인에게 많이 나타나지만, 최근엔 나이와 상관없이 일본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뉴스를 보고 있자니, 이게 결코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문제이기도 하고, 내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죽은 뒤 한참 뒤에나 발견될 정도로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는 독거노인, 정리해고를 당한 이후에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졌다는 어느 히키코모리... 결혼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많지 않은 젊은이들... 주변에 사람의 숫자는 많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사람들뿐... 가볍게 수다 떨 사람은 있어도 고민이 있을 때 상담할 사람은 없는 현실...
일본은, 겉으로 보기엔 무척 평온한 나라이지만, 동시에 무척 쓸쓸한 나라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도 특히 도쿄가 심한 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도 그렇게 안 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중소도시나 농촌이라고 해서 그런 문제가 안 생길 것이라고, 이제는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선진국이란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선진국일까? 무슨 무슨 연구기관에서 발표한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선진국일까?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선진국일까? 물론 그런 것이 선진국이 되는 조건 중 하나일 수는 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 돈은 많지만 아랍의 산유국을 선진국이라 하지 않으며, 언젠가 방글라데시, 멕시코, 콜롬비아 등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지만, 이런 나라를 선진국이라 하는 사람은 없으며, 러시아나 중국, 이란 등은 군사대국이지만 선진국이라 하진 않는다.
다른 나라보다 먼저 ‘실패’를 경험한 나라가 선진국이 아닐까?
글자 그대로 다른 나라보다 먼저 앞으로 발을 내딛은 나라가 선진국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과 일본은 선진국이다. 미국과 일본에 문제점이 없다거나, 그 나라 국민들은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거나 하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확실히 미국과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 가고 있으며, 그래서 먼저 성공할 때도 있지만 먼저 실패하기도 한다. 내가 미국과 일본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거리도 멀고 문화적인 차이도 크기 때문에, 미국이란 나라에서 한국의 미래상을 발견하긴 쉽지 않다. 반면 일본에선 참고할 점이 많아 보인다. 중학생 때였나, 신문에서 일본의 원조교제에 관한 가십성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그 때만 해도 다들 일본을 성적으로 문란한 나라라는 식으로 비웃었지만, 결국 10년 뒤에 한국 사회에도 원조교제는 잘 정착(?)하여, 이제는 뉴스거리도 안 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의 저출산고령화(少子高齢化) 문제를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머지않아 일본은 노인왕국이 될 것이라고 놀리던 분위기였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질렀다.
일본은 이제 저출산고령화를 걱정하는 단계를 넘어서, 무연사회(無緣社会)가 되고 있는 것을 걱정하고 있으며, 그 해결책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서 발생한 사회문제가 반드시 한국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점점 더 무연사회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며, 어쩌면 저출산고령화와 마찬가지로, 가까운 미래에 일본을 능가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연사회(無緣社会)는 내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해서, 뉴스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다. 일본에 있는 동안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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