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日에서 克日로

동해(東海)냐, 일본해(日本海)냐?

페이퍼컴퍼니 2007. 3. 29. 21:20

동해(東海)냐, 일본해(日本海)냐?

 

한국이 ‘내셔널리즘의 늪’에 빠져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동해(東海)’란 표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동해를 국제지도에 ‘East Sea(동해)’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한심한 발상이다.

 

동해가 ‘동해(東海)’인 것은 한국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의 중심은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니듯이 한국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동해라고 부르는 바다는 옛 러시아 사람들은 ‘소비에트해(Soviet Sae)’라고 불렀고, 일본인들은 ‘일본해(Sea of Japan)’라고 부른다. 동해라는 말에는 한국의 방위(方位)개념만 들어있을 뿐 보편적인 지역개념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차라리 이 바다를 ‘한국해(Sea of Korea)’로 부르자고 주장한다면 최소한의 협상의 여지라도 있겠지만, ‘동해(East Sea)’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똥고집 부리는 것밖에 안 된다.

 

동해 바다는 일본 입장에선 서해 혹은 시마네현이나 후쿠오카현을 기준으로 하면 상해(上海)가 된다. 그걸 한국의 동서남북 개념을 적용해서 동해(East Sea)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일본 입장에서, 아니 굳이 일본이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겠는가?

 

제 3자의 입장에서 봐도 ‘East Sea(동해)’란 표기는 납득하기 어렵다. 외국 사람에게 ‘East Sea(동해)’를 찾아보라고 하면 대개 자기가 사는 곳을 기준으로 찾지, 한국을 기준으로 해서 찾지 않는다. 그나마 ‘Sea of Japan(일본해)’를 찾아보라고 하면 어딘진 잘 몰라도 일본 근처 어디겠거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지만, ‘East Sea(동해)’란 말에는 그런 배려조차 없다.

 

우리가 서해라고 부르는 바다는 중국 입장에선 ‘동해’가 된다. 중국이 자기들 나라를 기준으로 그 바다를 ‘동해’라고 표기하도록 국제사회에서 로비활동을 벌이면 여러분은 기분 좋겠는가?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중국의 그런 입장을 지지해 줄 것 같은가?

 

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동해의 영문표기에는 그렇게 집착하면서도 서해의 영문표기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는 점이다. 서해의 영문표기도 ‘West Sea’가 아니다. 서해의 영문 표기는 ‘Yellow Sea(황해)’로 중국의 입장을 대변해서 적고 있다. 다시 말해 대황하의 황토가 떠내려 와 바다가 누런 색깔을 띄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서해’라고 부르는 한국보단 ‘황해(黃海’)라고 부르는 중국이 훨씬 더 보편적인 발상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서해’라는 이름에는 상대방 국가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지만, ‘황해’라는 이름에는 최소한 자연환경에 대한 배려는 있기 때문이다. 서해 바다는 한강보단 황하강의 영향을 훨씬 많이 받기 때문이다.

 

전 세계 지도의 97%가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라고 적고 있다는 사실에 그렇게 상심할 필요가 없다. 그 바다를 동해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은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편협한 생각이다. 지도를 펴놓고 동해 바다 주변을 잘 보기 바란다. 한국보단 일본의 해안이 더 길게 그 바다를 둘러싸고 있다.

 

정말 동해 바다가 ‘일본해’로 표기되는 걸 눈꼴사나워 못보겠다면 차라리 ‘평화의 바다’, ‘우정의 바다’, ‘동북아시아 바다’와 같이 좀 더 보편적인 이름을 제안하던가, 그것도 싫으면 독도를 기준으로 이쪽은 ‘동해’, 그쪽은 ‘일본해’로 하자 라는 식으로 주장해야지, 한국만의 방위개념을 적용해서 ‘동해’라고 박박 우기면 안 된다.

 

지도에서 ‘멕시코만(Gulf of Mexico)’이란 곳을 살펴보기 바란다. 그곳은 멕시코뿐만 아니라 미국, 쿠바가 에워싸고 있다. ‘멕시코만’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바다가 전부 멕시코 것이란 의미는 아니다. ‘멕시코만’이라고 불린다고 해서 자존심 상해하는 미국인도 없고, 자기들의 국력을 이용해서 그 바다를 ‘플로리다만’ 같은 걸로 바꾸려고 하지도 않는다. 인도양이 전부 인도 바다란 뜻도 아니고, 유럽 남동쪽에 있는 ‘흑해(Black Sea)’란 바다가 자연현상에 따라 조금 검게 보일 수는 있어도 ‘검은색 바닷물’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름은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이름이 모든 것을 결정하진 않는다. 그 이름이 갖는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이용하는 사람들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것이다. 편협한 생각에 온갖 무리한 방법을 동원해서 ‘Sea of Japan’를 ‘East Sea’로 이름을 바꾸는 것보단, ‘일본해’라고 이름 지어진 바다를 ‘한국’이란 이름을 가진 나라가 더 잘 이용하고 보호하는 것이 더 통쾌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