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끝나가는 여름 방학
애나 어른이나 방학 숙제, 미리미리 안 하고 개학 앞두고 몰아서 하는 건 똑같은 것 같다. 방학이 끝날 때쯤 되니까, 숙제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어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내가 다니는 학교는 여름 방학 기간이 2주 조금 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다시 수업 시작한다. 숙제와 상관없이 방학을 이용해서 총복습을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그런 ‘기특한 생각’이라도 했던 것에(남들은 놀러 갈 생각을 하는 것에 비해)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세상에 만만한 외국어는 역시 없는 것 같다. 한국인에게 있어, 일본어는 컴퓨터 같은 존재란 생각이 든다. 컴퓨터... 누구나 사용할 줄 알지만,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에, 글자 그대로 한국인 유학생이 넘쳐난다. 일본어학교에 다니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은 한국인! 하지만 이 중에 일본어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본어는 둘째로 치고, 한국어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쉬운 길’에 진리가 없다고 했던가? 일본 유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라서 그런지, 애당초 공부에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 일본에 너무 많이 오는 것 같다.
중급2 클래스가 되면서 문법을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주로 한자를 외우는 것에 중점을 두었는데, 중급도 절반 이상 지나니까 문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 예전엔 한자를 못 읽어서 문제였지, 일단 한자를 읽을 수 있으면 대부분의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 모르는 한자가 없는데도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 속출하고 있다.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데 쓰는 건 더 큰 문제다. 산 넘어 산이다.
여름 방학이라곤 해도, 알바는 방학이 없기 때문에, 반쪽짜리 방학이라 어디 멀리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공부나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날도 덥고 습하고... 여차저차 해서 다 물 건너갔다. 내가 일하는 곳은 유급휴가가 없기 때문에, 연휴를 만들려면... 쉬는 날만큼 월급이 깎이던가, 다른 주에 있는 휴일을 끌어 당겨서 써야 한다. 가뜩이나 적은 월급 더 적게 만들 수도 없고, 다른 휴일을 끌어당겨서 연휴를 만들면, 휴일 없이 일주일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므로... 이래저래 귀찮아서 관뒀다. 귀찮은 건 둘째 치고, 더러워서(?) 관뒀다. 차라리 ‘휴가 갈 사람은 일정 정해서 가라’는 말이나 하지 말던가... 이게 무슨 휴가냐고요... 비정규직의 서러움이란 게 이런 건가...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하나 더 하려고 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도 뜻대로 되질 않았다. 내년에 진학할 전문학교 오픈 캠퍼스에 견학을 가는 것이었는데, 원래 계획했던 것의 절반밖에 못 갔다. 남들 다 쉬는데 전문학교라고 다를 리 있겠는가? 여기도 휴가 기간이라서 오픈 캠퍼스가 없거나, 있던 것도 응모자가 적어서 취소되곤 했다. 뭐 취소된 곳에는 개인적으로 가서 1대 1로 상담하고 온 적도 있긴 했다. 1대 1 상담이었단 뜻은, 이 인구 많은 도쿄에서 응모자가 나 한 명이었다는 뜻인데, 이런 학교에 과연 진학할 가치가 있을까(아무리 휴가 시즌이라만 이렇게 응모자가 없어서야) 심히 걱정되기도 하다. 뭐 도쿄는 인구도 많지만 전문학교도 그만큼 많기 때문에, 학교 설명회의 응모자가 적다고 꼭 나쁜 학교라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조금 걱정은 된다.
만약 내가 고3 때 아무 생각 없이 대학에 안 가고, 지금처럼 직접 자기 발로 뛰어 다니며 학교 알아보고 대학에 갔다면, 인생이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자기가 간절히 원해서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남들 다 가니까 덩달아서 적당히 수능 성적에 맞춰서(혹은 부모 의지로) 가는 대학에서, 공부를 제대로 했을 리 없다. 그 때의 한(恨)이 많이 남아서 처음엔 전문학교가 아니라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도 생각을 했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만큼 일본에서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돈이 많이 들지 않는다. 현재의 환율로 1천만 원이 넘는 돈이 들긴 하지만, 학생 지원 제도도 그만큼 많고 또 여긴 등록금만 비싼 게 아니라 알바 인건비도 비싸다. 우리나라처럼 대학생 자녀 등록금 때문에 부모 허리가 부러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나같은 경우, 내년 3월까지 매달 받게 되는 문부과학성 장학금과 유학생 감면제도(지원제도) 등을 이용하고, 나머지 모자라는 돈은 알바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다. 문부과학성 장학금은 내년에 진학을 안 하면 반납해야 하기 때문에, 이거 토해내기 싫어서라도 진학해야 한다. 정말로 공부에 뜻이 있어서 열심히 한다면 전액 장학금도 그렇게 어렵지 않아 보인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이 늦었지만 대학생활 제대로 함 해 볼까... 생각을 했지만, 역시 관뒀다. 쓰레기같은 3류 대학 일본에서 또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일본 대학도 한국과 비슷한 문제가 있어서(사실상 진학률 100%, 본인이 싫어서 안 가는 것이지 가려고만 하면 어디든 가는 것 자체는 가능하다), 이제 대학이 대학이 아니다. 대학교 1학년, 2학년 이런 말 대신에 고등학교 4학년, 5학년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
현재의 내 상황으론 어디든 대학에 가는 건 가능하지만,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저 그런 대학에 가서 그저 그런 공부를 또 하느니(이런 미련한 짓은 이미 한국에서 충분히 했다), 차라리 전문학교에 가서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배우는 게 낫다고 결론지었다. 대학이 ‘대학’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했으면, ‘취업 학원’ 역할이나 제대로 하던가, 그것도 아니고 ‘실업자 양성소’가 되었다. 대학이란 글자를 보면 괜히 기분이 나빠진다...
아무튼 이제 작문 숙제만 하면 방학 숙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