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녀석

용산 철거민 참사 : ‘서울 지상주의’의 비극

페이퍼컴퍼니 2009. 2. 4. 20:32

검찰이 ‘용산 화재참사’ 수사를 사실상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한다. 화재의 원인은... ‘이명박 살인정권’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철거민들에게 있는 것으로 결론 날 듯하다. 서울중앙지검은 농성자들이 갖고 있던 화염병의 불티가 시너로 옮겨 붙은 것이 참사의 원인이 된 것으로 결론짓고, 농성자 20명 안팎을 사법처리할 방침이란다.

 

하지만 conspiracy(음모론) 작품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이번 발표가 ‘이명박 살인정권’의 음모다, 정보 조작이다, 경찰 봐주기 수사다...라며 못 믿겠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어떠한 사실이 진실인지 아닌지 철저히 따지는 비판정신을 갖는 건 권장할만한 일이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사사건건 ‘조작’이라고 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번 발표가 조작이라면, 검찰의 다른 발표는 어떻게 믿을 수 있겠으며, 설령 검찰이 철거민에게 유리한 발표를 했다한들 그 말은 또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무슨 뒷꿍꿍이가 있어서 철거민에게 유리한 수사결과를 ‘만든’ 것일까... 뭔가 더 큰 음모가 있을 것이야... 어차피 정부를 욕하는 일이 취미이고 직업인 사람들은 검찰이(정부가) 무슨 얘기를 하든 믿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번 수사결과를 대체로 믿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좋아서가 아니라(나는 한나라당을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다),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조직이 그렇겠지만, 조직 내부는 ‘하나’가 아니다. 조직은 하나일지언정, 그 안에 있는 구성원은 하나가 아니다. 개인별로, 부서별로, 파벌별로, 생존을 위해서 각종 암투가 횡행하는 곳이 조직 내부의 모습이다. 조직 구성원끼리 서로 뭉칠 때도 있지만, 서로 경쟁하고 헐뜯는 일도 많다.

 

화재 원인 조사에 참여했던, 검찰, 경찰, 소방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일치단결해서, 수사결과를 조작했을 가능성은 무척 낮다. 그들에겐 한통속이 되어 정보를 조작해야만 할 이유나 동기가 없고, 함께 그런 위험한 일을 할 동료의식도 없다. 만약 이번 발표가 거짓이라면, 그들 중 누군가에 의해서 정보가 밖으로 새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위인들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화재참사는 이 정도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 일로 계속해서 싸우는 것은 우리 사회 발전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에서 우리는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겠지만, 나는 ‘시골촌놈’이니까 그에 걸맞는 교훈을 말하고 싶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서울 지상주의’가 그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서울에서 살아야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생각... 있는 놈이나 없는 놈이나 서울을 벗어나면 죽기라도 하는 듯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강한 것 같다.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건 그래도 이해를 하겠는데, 쥐뿔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들까지, 꾸역꾸역 서울에서 살려고 하니, 우리나라의 서울 지상주의는 백약이 무효인 것 같다. 허드렛일을 해도 서울에서 해야 폼이 나는 건가... 나처럼 서울 아닌 곳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며 사는 사람은 사람도 아닌 건가...

 

이번 용산 사태의 원인도, 작게는 재개발 지역의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론 서울의 문제이다. 재개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그들이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은 어디나 사람들이 빽빽하고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법적인 보상금으론 같은 조건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킬 수 없다.

 

그리고 철거민들이 이주하길 원하는 곳은, 어디 산골짜기가 아니라, 재개발될 지역과 비슷한 조건의 핵심 상권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을 이주시키기 어렵다. 만약 인구가 줄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지방의 시/군으로 철거민들을 이주시킬 수만 있다면, 서로에게 좋으련만, 이건 그냥 나 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하다.

 

얼마나 화려하게 살다가 철거민까지 내몰리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자에게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기구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철거민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철거민까지 내려갔으면 막장 인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밑바닥 인생이다. 보상금을 두둑이 받아 계급상승을 꿈꾸다, 결국 경찰이나 용역직원에게 험한 꼴을 당하고 쫓겨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남에게 충고한 입장은 아니지만, 능력이 없으면 그에 걸맞는 삶을 살 필요가 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남들이 모두 살고 싶어 하는 서울 한 복판에서 눌러 살겠다고 버티면 반드시 탈이 생긴다. 능력이 없으면, 남들이 살기 싫어하는 곳에 가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며, 다시 일어설 기회를 노려야지, 모두가 선망하는 그 비싼 서울 한복판에서 살게 해달라고 조르면 어떡하란 말인가.

 

꼭 철거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밑바닥 인생은 밑바닥이라서 괴롭지만, 그만큼 자유로운(?) 몸이다. 가진 게 없으면 잃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서울 바깥으로 조금만 눈을 돌리면 [갈 곳]도 많고 [살 곳]도 많다. 왜 갈 곳이 없고, 왜 먹고 살 방법이 없다고 재개발 지역에서 불법으로 눌러 살면서 못나가겠다고 버티는 건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간다. 농촌에서, 산골에서, 어촌에서... 지방에서 사느니, 차라리 서울에서 철거민으로 사는 게 더 좋다는 건가?

 

지방에서 구질구질하게 사느니, 서울에서 화려하게 죽겠다는 생각인 건가...
곧 죽어도 서울이 좋다는 사람들은 방법이 없다...
원하는 대로 서울에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죽는 수밖에...

 

우리나라 속담에(속담 맞나...??)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 능력이 안 되면, 지방의 개똥밭에서 구르면서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