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녀석

용산 철거민 참사 : 재개발/재건축 지역의 ‘한탕주의’

페이퍼컴퍼니 2009. 1. 24. 14:34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한국 뉴스를 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만큼 사회문제를 보는 감각도 무뎌지고 있는 것 같다.(그렇다고 예전에 날카로웠다는 뜻은 아니고^^;) 외국 땅에서 내 앞가림 하기도 벅찬 마당에, 한가하게(?) 시사문제에 관심을 갖는다니... 어찌보면 가당치도 않은 사치스런 생각일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외국에 와서 버둥버둥 아르바이트하며 글자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공부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가 더 나은 사회로 가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그런 과정에서 나도 잘 되고 성공하겠다는... 지극히 세속적인 생각도 물론 있다. 따라서 국내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완전히 끊고 사는 것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재개발지역에서 5층 건물 옥상에 가건물을 설치하고 농성중인 철거민들을 강제진압하는 과정에서, 경찰관 1명과 철거민 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죽은 사람도 불쌍하지만 다친 사람도 꽤 많은데, 어쩌면 평생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할 부상자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이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안 봐도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자칭’ 보수진영과 역시 ‘자칭’ 진보진영이 서로 헐뜯으며 쌈박질을 하는 건, 이젠 공식처럼 되어 버렸다. 여기에 초고속 인터넷 강국 대한민국의 네티즌들이 초고속으로 가세하여 난투극을 벌이면, 뭐 말 그대로 난투극이 되는 거다. 보수진영은 철거민의 불법성과 준법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니들부터 언제부터 그렇게 법을 잘 지켰다고...), 진보진영은 정부의 과잉진압과 폭력성을 규탄하며 책임자 처벌과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경찰이 평화적으로 ‘진압’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망자가 많이 생겨서 이번에 큰 뉴스가 되긴 했지만, 사실 철거민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가(사실상 서울이)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아주 오래된 문제이다. 서울이 급격히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머리가 좋거나 운이 좋거나 아니면 법을 교묘하게 악용한 사람들은 한 몫 단단히 챙길 수 있었고, 머리가 나쁘거나 운이 나쁘거나 법을 교묘하게 악용하다 걸린 사람들은 망했던 것이고... 이번 용산 사태의 경우는 재개발 지역에서 한탕하려는 사람들이 법을 악용하다 뜻대로 안 되니까, 뭉쳐서 버팅기면 어떻게 되겠지...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감히’ 명박이 정권한테 대들다 생긴 문제이다.

 

나는 처음부터 이명박 정부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사건으로 대통령 욕할 생각이 별로 없다. 사실 대통령이 크게 욕먹을 일도 아니다. 경찰이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일부러 불 지른 것도 아닌데, 대통령한테 뭘 어쩌란 건가? 어차피 대통령은 국정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모든 일에 대해서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대통령 책임이라고 몰아붙이면 대한민국에 대통령 할 사람 아무도 없다. 나는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이다), 바로 이렇게 사사건건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는 게 무척 못마땅했었다. 따라서 비록 이명박을 좋아하진 않지만 뭔가 건수만 생겼다 하면 대통령 헐뜯는 일에 동참할 생각이 없다.

 

사람이 죽어서 이번 사건을, 독재정부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 결국 돈문제이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 가서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달라는 철거민과, ‘법대로’ 하겠다는 정부 측의 갈등이다. 이번 사건은 옛날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쓰여졌던 시절의 철거민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아무리 이명박이 독단적이라 하더라도, 지금 정부와 당시의 정부를 비교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공권력을 우습게 여기는 시대에, 이런 얘기가 나오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우리나라 재개발/재건축 지역은 무척 지저분한 곳이다.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별의 별 인간들이 다 모여들고, 괜히 멀쩡한 사람까지 ‘한탕주의’의 함정에 빠져 황당한 시추에이션을 벌이기도 한다. 아무튼 건물이나 땅의 소유주는 한몫 단단히 챙겨 나가려고, 이런저런 불법/탈법 행위를 저지르고, 여기에 세입자들도 가세한다. 철거민들이 어느날 갑자기 쫓겨나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얘기이다. 대개 재개발/재건축 지역은 아무리 늦어도 5년 전에 조합이 만들어지고, 일명 ‘소문’은 훨씬 전에 나돈다. 결코 ‘어느날 갑자기’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대개의 세입자들은 그곳이 재개발/재건축될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세입자로 들어간다. 왜? 당연히 한탕 벌려고...

 

정상적인 세입자들의 경우, 조합측과 합의하고 철거에 동의하며, 또한 정상적인 보상금을 받고 다른 곳에 이주해 그럭저럭 살아간다. 우리나라 법에 문제가 많긴 하지만, 그렇게 순 엉터리는 아니다. 문제는 보상금을 노리고 들어오는 세입자들이다. 이번 용산의 경우, 남아있는 철거민 모두가 그렇게 보상금을 노린 사람들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진 모양새로 볼 때 아마 십중팔구는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비싼 권리금, 인테리어비용 등을 투자하면 보상금을 많이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자기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보상금이 적으면, ‘본전생각’에 머리가 획 돌아버리는 것이다. 이러면 현장을 점거하고 공사를 방해하며 돈을 더 달라고 떼를 쓴다. 공사기간을 맞춰야 하는 조합과 시공사의 약점을 잡고 떼를 쓰는 것인데, 뭐 이러다 운이 좋으면 보상금을 더 받을 수도 있지만, 너무 지나치면 강제진압을 당하는 수가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했다. 떼를 써도 적당히 써야지...

 

거꾸로 생각을 해보자. 용산 재개발 지역을 그냥 저대로 철거민들이 눌러 살게 놔두던가, 아니면 법을 초월하는 보상을 하여 철거민들을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켰다면, 잘 했다고 정부에게 박수쳐 줄 것인가? 정부 욕하는 게 취미인 사람들은 이래도저래도 정부를 깔 것이다. 뭐 국민들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것도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므로, 대충 넘어가고...

 

예외는 예외를 낳는 법이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로 볼 때 용산 철거민 문제... 돈으로 해결 못할 것도 없다. 그냥 돈 주고 해결해도 된다면 정부 담당자들도 마음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한 번 예외가 생기면, 그 다음에 또 다른 예외가 생기고, 결국엔 법과 규칙이 무너진다. 법과 규칙이 무너졌을 때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건 결국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사람들, 원칙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