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녀석

‘광우병 공포심리’를 판매하고 구매하는 사람들

페이퍼컴퍼니 2008. 4. 30. 15:35

‘광우병 공포심리’를 판매하고 구매하는 사람들

 

광우병과 관련된 이런저런 얘기를 듣다보면 정말로 불안해진다. 누군가 나에게 미국산 쇠고기라며 먹으라고 권했을 때, 과연 내가 그걸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지난 4월 18일 이명박정부가 전격적으로(이것은 졸속의 다른 이름이다) 체결한 한미 쇠고기협상으로 광우병 논란은 더욱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정말로 대한민국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일까… 앞으로 10년 뒤 한국에서 인간광우병 환자가 속출해서 국가적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인가…(북한이여! 기뻐하라. 남조선이 망한단다.) 정말로 그럴까?

 

■ 생물학무기 부럽지 않은 광우병의 성능

 

얘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농담반 진담반으로…
만약 미국산 쇠고기가 그토록 위험한 것이라면, 지금도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에겐 <하늘이 내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힘들게 핵무기, 생화학무기 탈취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자살폭탄 테러로 자기 목숨 날릴 필요도 없고, 비행기를 건물에 쑤셔박을 필요도 없다. 어차피 미국은 광우병 환자들이 많이 발생해서 스스로 몰락할테니까.

 

0.1g의 소량으로도 감염될 수 있고, 감염되면 100% 사망, 게다가 광우병 유발 물질은 끓여도 죽지 않고 강력한 화학물질에도 살아남는다고 한다. 광우병은 웬만한 생물학무기 부럽지 않은 성능이다. 테러에 이보다 더 좋은 게 또 있을까? 앞으로 테러리스트들은 미국산 쇠고기 판매에 앞장 서야 할 것이다. 다만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 흠이지만, 미국을 멸망시키는 일인데 10년쯤 참고 견뎌야지 어쩌겠는가! 대형테러에 보통 몇 년씩 준비기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해볼만한 일이다.
(이상 농담반 진담반이었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 한국과 일본의 상황

 

한미 쇠고기협상은 한미 FTA 협상의 연장선에 있다. 흔히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태도를 비교하는데, 미국과 FTA 협상을 체결하지 않는 일본과 한국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지만, 일본에겐 그럴 이유가 없다. 일본은 FTA 문제에서도 자유롭고 경제적 규모 면에서도 여유가 많다.

 

■ 경제논리, 정치논리

 

쇠고기 문제를 포함하여 한미 FTA는 경제적 이익 때문에 체결하는 것이지만, 정치적 이유도 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고려가 꽤 많이 작용했다.(절묘한 협상 체결 날짜라든가 등등) 우리는 정치와 경제가 분리되는 게 좋은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와 경제는 분리될 수 없으며, 분리되어서도 안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선 정경유착이 너무 커서 문제가 된 것이지, 정치와 경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과도한 시장주의와 자본주의의 폐단은, 국민들의 표를 먹고사는 정치 쪽에서 규제하는 방법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그냥 두면 폭주한다. 정치인들이 쓸데없는 간섭을 해서 문제지, 정치는 경제를 적절하게 통제해야 한다.

 

따라서 한미 FTA 협상,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를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협상은 정치인이 하지만 그걸 뒤에서 지원하는 것은 경제인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서 구분이 쉽지 않다. 이번 쇠고기협상도 ‘광우병’ 문제를 빼더라도 협상 과정 자체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나도 협상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양국 정부가 하는 협상이고 정치적 협상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독재국가가 아닌 이상 정부의 대외협상에 대해 언론이나 국민들이 일방적으로 박수 치는 사례는 사실상 없다. 이번 쇠고기협상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하는 일에 온국민이 잘했다고 박수쳤던 적이 있기나 했던가! 따라서 정부가 하는 대외정책에 비판과 감시는 꾸준히 해야 하지만, 큰 잘못이 없다면 적당히 모른 척 하고 눈감아주는 아량(?)도 필요하다. 너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 정부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고, 서로에게 상처만 깊어진다. 그들이 ‘정치인’이란 점을 감안해 줘야 한다.

 

그러면 <협상 과정>의 문제는 넓은 아량으로 봐준다 치고, <협상 결과>의 문제는 어떨까? 한우 농가는 줄줄이 도산하고, 전국민이 광우병에 걸릴까?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한우 농가 때문이라기 보단(미국산 쇠고기는 한우 시장보단 호주산 쇠고기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더 크다), 광우병 때문이므로 이 문제만 살펴보자.

 

■ 동물을 집단으로 사육하는 것은…

 

우선 광우병 얘기를 하기 전에 축산업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축산업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모습과 광우병 문제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하고 도축하는 일은 무척 <더러운 일>이다. 가축은 그냥 두면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병에 걸려 죽는다. 질병의 문제도 있지만, 가축은 시장성(상품성)을 갖춰야 하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항생제를 비롯한 많은 약품이 사용되고, 사료에도 별의 별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다. 동물이 사육되고 도축되고 가공되는 과정은 무척 지저분하고 생각 이상으로 끔찍하다.

 

그렇다고 이런 동물들이 야생상태의 동물들보다 불행(?)하다고 단정짓는 것도 어렵다. 동물을 상대로 행복/불행을 논하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축사 안에서 먹이, 천적, 자연재해 걱정 없이 적당히 살다 때가 되면 죽는 것과, 야생상태에서 천적에게 잡아먹힐 위험을 무릅쓰며 먹이를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돌아다녀야 하고, 가뭄, 홍수, 질병 등으로 목숨의 위협을 항시 받으며 사는 것 중 과연 어느 쪽 삶이 동물에게 더 좋은 것인지 판단이 쉽지 않다. 고기생산용 가축들은 너무 일찍 죽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야생상태의 동물들도 천수(天壽)를 다하고 즉 늙어서 죽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야생동물들도 병에 걸려서, 천적에게 잡아먹혀서,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어서, 자연재해로 등등 ‘젊은 나이’에 많이 죽는다. 축사를 위생적으로 관리하고 먹이를 잘 주면 동물들은 대개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인 개입(항생제 등 약품 사용, 사료 첨가물 등)이 필요한데, 당연히 부작용도 수반된다.

 

■ 병든 소 동영상

 

광우병 얘기와 함께 떠돌아다니는 병든 소 동영상이 있다. 최근에 유행(?)하는 동영상은 ‘휴메인 소사이어티’라는 동물보호단체가 몰래 촬영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대규모 리콜사태와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다. 병든 소를 전기 충격으로 일으켜 세우고, 지게차로 억지로 끌고가는 모습은 정말 혐오스럽다. 그러나 규정을 위반하며 병든 소를 도축해서 파는 행위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병든 소가 발생하는 것 자체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소를 많이 키우다 보면 병든 소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혐오스런 동영상을 보며, 광우병 걸린 소를 연상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광우병에 걸린 소가, 다른 질병에 걸린 소들과 함께 도축되어서 시장에 유통될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니냐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병든 소 동영상에 출연(?)한 소가 광우병이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광우병이란 증거도 없다. 이미 도축되서 사라진 소이기 때문에 이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미국에서 사육되는 소 1억 마리 중 1년에 평균 3마리 정도가 광우병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런 미미한 확률로 병든 소 동영상을 광우병 동영상으로 둔갑시키는 것이야말로 의도적인 여론조작이다. 내가 하는 여론조작은 로맨스이고, 남이 하는 것은 불륜이란 말인가? 광우병에 걸린 소를 촬영한 동영상은 엄연히 따로 존재한다.

 

■ 서양인은 무얼 먹고 광우병에 걸렸을까?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은 소의 뇌, 내장, 척수 등 광우병을 일으키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부위를 뜻한다. 서양인은 살코기만 먹지만, 한국인은 (서양인이 먹지 않는) 소의 여러 부위 즉 SRM이 포함된 소의 부산물도 먹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주장이 있다. 틀린 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상한 점도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인간광우병에 걸린 서양인은 도대체 무얼 먹고 감염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소의 뇌를 먹었을까, 눈알을 먹었을까, 내장을 먹었을까, 척수를 먹었을까? 아마도 그런 걸 먹지는 않았을텐데 그들은 왜 광우병에 걸린 것일까?

 

소를 직접 먹은 것 때문이 아니라, 간접적 경로로 감염되었을 수도 있지만, 현재 우리가 주로 걱정하는 것은 소를 직접 먹는 것이다. 소를 이용한 가공식품, 의약품으로 인한 감염도 물론 가능하지만, 수입반대론자들은 소고기 수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지 소고기가 조금이라도 들어간 것의 수입을 반대하고 있지 않다. 혹자는 우리 국민이 소고기를 직접 먹어서 광우병에 걸리는 것보단, 이런 소고기 함유 의약품이나 가공식품(라면스프 등)으로 감염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반대행위의 목표를 바꿔야 한다.

 

■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쉽게 걸린다?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까지 광우병에 걸린 사람들이 전부 MM형인데(정상프리온 단백질의 아미노산 결합의 한 형태), 이 비율이 한국인이 특히 높다는 것이다. 역시 틀린 말이라고 할 순 없지만 이상한 점도 있다. 영국이나 미국에도 한국인이 살고 있을텐데, 그들의 광우병 발병 확률이 서양인에 비해 특별히 더 높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한국인의 숫자가 적고 식생활이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광우병에 걸릴 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유전자 구조를 갖고 있다면 지금쯤이면 의미있는 통계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나오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실험재료로 사용하는 것이냐고 울분을 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진정한 실험재료(?)는 미국에 사는 우리 교포들이다. 우리보단 미국 교포들이 먼저 죽을 것이므로 너무 조급해하지 말자. 만약 미국산 쇠고기가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 맞다면, 광우병에 걸릴 것이 확실시 되는 유전자 구조를 갖고 있고 미국산 쇠고기의 본고장에서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은 머지않고 멸종할 것이다.

 

■ 미국의 음모론?

 

미국 정부가 축산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혹은 축산업자들의 압력 때문에) 광우병의 위험성을 축소은폐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는 설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자국의 쇠고기 안전성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인도 불안해 하는 쇠고기를 우리가 수입해서야 되겠냐는 논리인데…

 

우선 미국은 독재국가가 아니다. 정부 발표를 모든 미국인들이 순순히 따르고 믿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리가 맨날 대통령과 정치인을 술자리 안주로 씹어삼키 듯이, 미국도 (우리와 형태는 다르겠지만) 정부에 비판적이고 정부를 불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런 반정부 성향의 사람들에 부화뇌동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물론 주의는 기울여야겠지만…

 

축산업자들의 압력 때문이든 자발적이든, 미국 정부가 자국의 축산업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이 때문에 미국은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검역기준까지 바꾸는 무리한 짓까지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미국이 광우병 위험성이 있는 쇠고기를 축산업자의 이익을 위해 알면서도 여론을 조작해가며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는 음모론은 설득력이 없다. 이것은 미국의 언론과 여론형성 과정을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이다. <정부의 음모론>은 영화나 드라마의 좋은 소재가 될 순 있어도,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선 강력한 동기부여와 매우 치밀한 구성원간 결속력이 필요하다. 미국 정부와 축산업계의 규모로 볼 때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올 가능성이 매우 크고, 축산업자의 이익을 위해 광우병 쇠고기를 자국민에게 먹이는 위험성을 무릅써야 동기가 미국 정부에는 없다. 그렇게 해야 할 동기도 없고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올 가능성도 크고 주변에 감시자도 많은 상황에서 이런 음모론이 과연 가능할 것 같은가?

 

■ 공포심리를 팔아라!?

 

미국은 우리에게 쇠고기를 조금이라도 더 팔아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에 상응해서 미국에 무얼 팔아서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손해를 만회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서로가 서로에게 <광우병 공포심리>를 팔고 또 그것을 구매하기에 바쁘다.

 

언론은 원래 위험한 사건을 좋아한다. 그래야 여론의 관심을 끌 수 있고 소위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도 언론의 중요한 사명이다. 따라서 한미 쇠고기협상과 광우병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딱히 문제 삼고 싶진 않다. 비록 선정적이고 지나치게 위험을 부풀렸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래야 시청률이 나오기 때문에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정부정책과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서 이성적인 토론이 되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내가 광우병을 연구했던 전문가도 아니고, 나 역시 책이나 언론을 통해서 정보를 접할 뿐이다. 내가 틀렸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정말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광우병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한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 징조가 인터넷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걱정은 되지만, 극복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