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하는 녀석

쇠고기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했던가…

페이퍼컴퍼니 2008. 4. 26. 00:21

쇠고기가 언제부터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했던가…

 

한미 쇠고기협상을 두고 말들이 많다. ‘굴욕적인 퍼주기 협상’, ‘국민 건강권을 무시한 협상’, ‘우리 축산 농가를 말살하는 협상’ 등등 말이 참 많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지난 18일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절묘한 타이밍으로) 타결된 한미 쇠고기협상으로, 우리 국민들은 광우병에 걸리게 되고, 축산 농가들은 줄줄이 도산하게 될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미국’이란 얘기만 나오면 뭔가 큰 손해를 본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된 것 같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협상을 하는데, 아무렴 우리가 손해를 보면 봤지, 미국이 손해 보는 장사를 할 리는 없다, 대충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 한미 쇠고기협상에 문제가 많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보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광우병으로 찌든 쇠고기를 한국이 마지못해 ‘굴욕적으로’ 수입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이런 반미성향의 사람들은 틈만 나면 미국에 당당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미국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으며, 올바른 한미 관계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친미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력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지만, 잘못된 행위를 잘못된 행위로 바로잡을 순 없다. 따라서 미국과 뭔가 했다 하면 맨날 ‘굴욕적’이라고 외쳐대는 사람들도 우리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되기는, 친미주의자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소’가 갖는 의미는 고기와 우유 밖에 없다. 옛날에는 소가 쟁기질을 하여 농촌에서 노동력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일이 사실상 없어졌다.(간혹 관광 등을 이유로, 소에 쟁기나 수레를 달기는 한다.)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와 한우는 엄연히 구분되고, 이번 한미 쇠고기협상은 젖소와는 사실상 관련이 없다. 따라서 남는 것은 고기를 목적으로 사육하는 한우이다.

 

그런데 한미 쇠고기협상이 타결되지 않더라도, 우리 국민들은 한우를 먹을 일이 거의 없다. 한우는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우리가 먹는 쇠고기는 이미 대부분이 외국산이다. 진품 한우를 자기 돈 내고 직접 구매해서 먹어본 사람이라면, ‘돈 좀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또한 한우냐 아니냐의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식생활에서 쇠고기는 특별한 날에만 올라오는 음식이지, 평소에 먹는 음식이 아니다. 한미 쇠고기협상을 체결하든 말든 한우를 사 먹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어차피 값비싼 한우의 소비는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지, 일반 국민들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한우를 사먹던 사람들이 미국산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가끔씩 특별한 날에 한우를 사먹던 서민들도 미국산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지만, 그 전에 생각할 것이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긴다. 언제부터 한우가 우리한테 그토록 중요했단 말인가? 서민들이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한 이런 비싼 음식까지 걱정해줘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 많은 사람들의 소비행태는 값싼 대체물이 수입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한우가 미국산 쇠고기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정말로 품질이 높다면(나는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부유층은 여전히 미국산보다 한우를 선호할 것이다. 따라서 한우가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자리바꿈할 생각이 없이, 지금처럼 비싼 가격에 고품질을 고수할 생각이라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부유층에 대한 마케팅 전략을 새롭게 짜는 것으로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다만, 한우가 가격은 훨씬 비싸면서 미국산과 품질면에서 차이가 없거나 더 나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아무리 국산이라 하더라도, 품질이 나쁘면서 가격은 더 비싼 것을 구매하라고 소비자에게 강요할 순 없다.

 

남은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다. 정말로 광우병에 걸린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게 될 것인가? 물론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곤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0%가 아니란 이유로 수입을 금지해야 한다면, 무역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한미 쇠고기협상으로 우리가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게 될 것이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검역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문제를 100% 차단할 순 없다. 99.9999…%까지 방지할 순 있어도 100% 방지는 불가능하다. 이건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쇠고기를 수입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므로 위험성은 항상 존재하고 실수가 생길 수 있다. 만약 이런 위험성을 이유로 어떤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면, 사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그 위험성이 얼마나 되느냐이다. 우리가 얻는 이득이 위험을 감수하는 비용보다 크면 그것은 채택되는 것이고, 위험으로 인한 비용이 이득보다 크면 채택하지 않으면 된다. 중국산 농산물에 그토록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데도, 계속 수입을 하는 이유는 위험으로 인한 비용보단 이득이 더 크기 때문이지, 결코 중국산 농산물이 더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감히 어떻게 무시무시한 광우병과 다른 걸 비교하냐고 따질 수 있다. 바로 무시무시한 광우병이기 때문에 비교가 가능하다. 치명적인 질병일수록 검역이 더 까다롭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검역이든 뭐든 간에, 위험성이 높은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위험성이 낮은 것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두기 때문에, 전체적으론 위험성이 평균으로 가까워진다. 비행기가 자동차보다 훨씬 더 위험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때는 더 까다로운 절차가 있다. 비행기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대형사고가 되지만 그 횟수가 적고, 자동차 사고는 사람이 적게 죽는 대신 발생 빈도가 많다. 따라서 전체적인 위험성은 평균으로 회귀하며, 실제로 비행기보단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률이 높다. 즉, 여러분은 그토록 위험한 비행기 탈 때보단, 자동차 탈 때 죽을 확률이 더 높다.

 

한미 쇠고기협상으로 우리가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를 먹게 될 것이라고 선동하는 사람들은 ‘위험성 제로’를 원하는 것 같다. ‘안전성 100% 확보’를 원한다면 그 어떤 무역행위도 하면 안 된다. 더 나아가 이 세상에 100% 안전한 음식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그런 걸 원하는 사람은 그냥 굶어 죽으면 된다. 광우병이 무서워서 쇠고기를 못 먹겠다는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광우병보다 발병확률이 훨씬 높은 위암과 높은 관련성이 있는 소금은 어떻게 먹으며, 폐암과 높은 관련이 있는 담배는 어떻게 피우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광우병 쇠고기가 우리나라 검역을 쉽게 통과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고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미국에 굴욕적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미국이 한국에 광우병 쇠고기를 억지로 보낼만큼 충분히 힘이 세고, 한국은 찍 소리 못하고 광우병 쇠고기를 얻어먹는 힘없는 국가라고 가정하고 있다. 나는 미국이 우리나라에 광우병 쇠고기를 팔아넘길 만큼 대단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나라가 그런 미국에 대응하지 못할만큼 형편없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검역 시스템을 그토록 믿지 못하겠는가? 우리나라의 외교력(국력)을 그토록 믿지 못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다른 사회 시스템은 제대로 믿으려 할까? 과연 누가 우리 사회의 신뢰를 갉아 먹는 존재인지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