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獨島)에 관해서 생각하고 싶은 것
독도(獨島)에 관해서 생각하고 싶은 것
일본 때문에 또 나라가 시끄럽다. 정확히 말하면 일본이 시끄럽게 한 게 아니라 우리가 지혼자 열 받아서 스스로를 시끄럽게 만드는 것이지만, 어찌되었던 ‘일본’이란 소재로 시끄럽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얘기만 나오면 열 받는 것일까? 단순히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사죄를 안 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기엔 이해가 안가는 점이 많다.
며칠 전 모 동아리 정모가 있었다. 그런데 발표자가 하고 많은 주제 중에서 “독도에 관해서 생각하고 싶은 것”이란 제목의 발표를 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자연스럽게 모임의 화두가 “그쪽”으로 갔다.
독도 얘기가 나온 김에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가 독도에 관해서 생각할 것은 (1)독도는 정말로 한국 땅이 맞는가? (2)독도란 조그마한 섬을 지켜야 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인가? (3)독도와 우리 개인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이다. 물론 더 많은 논점이 있지만 우선 우리는 이 세 가지를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한다.
뭐가 어찌되었든 현재 독도에는 한국 사람들이(경찰들이) 살고 있으니까 한국 땅이 맞다. 역사적, 국제법적인 문제를 떠나 독도는 한국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 뭐라 하든 그냥 눌러 살면 그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독도를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은 ①국제재판을 하는 것과 ②돈 주고 사는 것 그리고 ③한국과 전쟁을 하는 것이다. 일본이 독도 때문에 전쟁을 벌일 이유는 없으며 또한 돈을 주고 살 이유도 없다.(물론 한국이 팔지도 않겠지만) 남은 것은 재판 밖에 없는데 한국이 ‘쌩까면’ 재판 안 열린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 사람 몇몇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떠벌이는 것에 신경 쓸 까닭이 별로 없다. 동네 개 짓는 소리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듯이-_-;
그런데 독도는 정말로 한국 땅일까? 아니 독도는 현재 명백하게 한국 땅이므로 이런 질문은 옳지 않을 듯 싶다. 질문을 바꾸자. 독도는 정말로 옛날부터 한국 땅이었을까? 우리는 독도가 한국 땅이란 근거를 역사적 맥락에서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독도는 옛날부터 우리 땅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우리 땅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에는 독도가 한국 영토가 아니라는 것도 꽤 있으며, 일본도 그런 것을 많이 축적하고 있다. 때문에 역사적 근거로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주장하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어떤 지역이 옛날에 우리 영토였다면 어떤 지역은 옛날에 우리 영토가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어찌된 건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자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옛날에는 육지에서 먼 바다에 있는 섬을 오가는 기술이 그렇게 발달하지 않았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먼 바다에 나간다는 것은 거의 죽으러 가는 것과 같았다. 그런 상황에서 옛날 사람들이 독도란 작은 섬이 어느 나라 땅이냐에 그렇게 신경을 썼을까? 독도가 한국 땅이든 일본 땅이든 누구 땅도 아니든 옛날 사람들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막말로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 독도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했겠는가, 원양어선을 보내서 고기를 잡았겠는가, 시추공을 뚫어 천연가스를 추출했겠는가? 조선시대까지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동해 먼 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 누구 땅이든 먹고 사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역사적 기록에는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기록도 있는 반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기록도 있다. 쾌속선과 원양어선과 군함이 바다를 누비는 지금의 관점에서 옛날을 생각하면 안 된다.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 땅이었다고 하는 것은 의외로 취약한 약점을 내포할 가능성이 있다.
독도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국제해양법이 바뀌면서 부터이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로 넓어졌는데, 문제는 이런 논리대로라면 한국, 중국, 일본은 상대방 앞바다는 물론 육지까지 200해리 안에 포함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래서 각 나라는 개별적으로 어업협정을 채결했는데, 한국과 일본은 동해에서 선을 그을 때 독도가 걸리적거렸던 것이다. 알다시피 일본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도 영토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독도가 한국 땅이냐 일본 땅이냐 하는 것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왜 그런지 계속해서 살펴보자.
그렇다면 독도는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야할만한 가치가 있는 섬일까? 독도가 한국 땅이란 것이 우리에게 그토록 절실하고 중요한 문제일까?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근처 쿠릴열도에 있는 4개 섬들은 원래 일본 땅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옛날부터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따지자면 엄연히 일본 땅이 맞다. 그런데 이 섬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러시아(구 소련)가 먹어 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서 러시아에 귀속된 것이다. 일본에선 독도는 일본 땅이란 말보단 쿠릴열도에 있던 섬들이 일본 땅이란 말이 더 많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독도는 작은 무인도여서 일본인이 살지 않았지만, 북방 4개 섬들은 옛부터 살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에 귀속되면서 수많은 일본인이 고향에서 강제로 추방되었다.
사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독도(다케시마)의 존재를 잘 모른다. 시마네현에서 ‘독도의 날’을 제정하고 몇몇 정치인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말해서 우리는 열받고 있지만,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슬퍼할 일본인도 거의 없고, 독도가 일본 땅이 된다고 기뻐할 일본인도 많지 않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관심도 없고 그 존재조차도 잘 모르고 있는 독도 때문에 괜히 우리만 열 받고 있는 셈이다. 일본에서 종종 헛소리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건 사실이지만, 어떤 나라 어떤 곳이든 헛소리 하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 한국에도 있지 않은가? 조선일보나 한나라당 같이^^; 미친 놈 헛소리 하는 것에 일일이 신경 쓰고 대꾸하고 열 받고 살면 너무 힘들지 않겠는가?
아무튼 한국의 역사인식으로 보면 쿠릴열도에 있는 4개 섬은 당근 일본 땅이며, 러시아는 일본한테 돌려줘야 한다. 그런데 러시아의 영토개념은 우리랑 사뭇 다르다.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유럽과 인접해 있는 곳은 영토가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 전쟁 등의 이유로 어떤 때는 러시아 땅이었다가 또 어떤 때는 유럽의 어떤 나라 땅이었다가, 이런 식으로 유럽 쪽에 있는 러시아의 영토는 주인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러시아의 영토개념은 우리처럼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라 “뭐, 바뀔 수도 있는 거지~”이다. 쿠릴열도의 섬 역시 전쟁에 이겨서 따먹은 건데 뭐가 문제냐? 는 식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섬들이 러시아 땅이긴 한데, 그 주변 바다의 어업권은 일본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원양어선이 그쪽으로 고기 잡으러 갈 때 러시아 영토니까 물론 러시아한테도 허가를 받지만 일본한테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독도가 한국 땅이긴 한데, 독도 주변에서 고기 잘 잡히는 곳의 어업권은 전부 일본이 갖고 있다. 정리하면 우리가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00리 어쩌구 저쩌구...’ 울분을 토하며 ‘조그마한 섬’을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이 대동단결할 때, 일본은 ‘넓은 바다’를 낚아 챈 것이다.
우리가 독도를 지켜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때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같은 추성적 개념도 있지만, 실리적 이유도 크다. 즉, 독도가 일본한테 넘어가면 우리의 어업권이 많이 축소되고 주변 해역에서 천연가스나 해저광물 개발 입지가 좁아져 경제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본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독도는 분명 한국 땅임에도 우린 실리를 못 챙기고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감정에 얽매여 ‘독도는 우리 땅’이란 것에 집착할 때, 일본은 독도 주변에 있는 알맹이를 다 빼가고 있다. 이쯤 되면 ‘독도는 우리 땅’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독도가 한국 땅이란 사실에 집착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혹자는 독도도 우리가 먹고 주변 어업권도 우리가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이것저것 다 우리 것으로 할 만큼 국제관계는 녹록하지 않다. 그거 다 빼앗길 만큼 일본은 바보가 아니다. 러시아는 바보라서 일본한테 쿠릴열도 어업권 준 게 아니다. 외교란 것은 기본적으로 주고 받는 것(Givd & Take)이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협상을 마치고 돌아갈 때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뭔가 보여주어야 하는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 주는 건 없고 받기만 하겠다는 자세는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겠다는 자세이다.
독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우리가 일본과 협상을 할 때 대단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우리나라에서 협상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까딱 잘못했다간 자손 대대로 매국노 소리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독도 그 자체를 지키는 데 총력을 펼치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외교관계자는 다른 건 다 어찌되어도 상관없으니까 독도는 꼭 지켜야 한다는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고, 일본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협상을 주도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조이다. 독도에 코가 꿰인 한국과 그렇지 않은 일본이 협상을 하면, 우린 비록 독도는 지킬 수 있을지언정 그 이외의 것에선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독도와 나는 무슨 관련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독도 때문에 이득 보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손해 보는 것도 없다. 국가의 행복이 꼭 개인의 행복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다. 독도가 한국 땅이란 사실이 도대체 한국인 개개인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 걸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도에 대한 병적인 집착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다른 모든 문제를 떠나서 우리 개개인은 왜 독도를 지켜야 하는 것인가? “독도는 우리 땅”을 외치면서 이런 근본적인 생각을 너무 안 하는 것 같다.
“독도는 한국 땅이다”라는 사실(sein/자인)과 “독도는 한국 땅이어야 한다”는 당위(sollen/졸렌)는 다른 것이다. 독도는 지금 한국 영토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계속해서 한국 영토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우리는 왜 독도를 지켜야 하는 것이며, 독도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지, 왜 독도 얘기만 나오면 열 받게 되었는지 그 메커니즘을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최근 아니 오래 전부터 표출되고 있는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분노는,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도 아니고, 실리를 챙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진리나 정의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왜 분노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한다.
일본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날리는 것은 좋지만 과녁을 잘 보고 날렸으면 한다. 지금까지 일본을 향해 화살은 많이 날리는데 제대로 명중시킨 적이 없지 않은가? 일본이란 과녁은 시기각각 움직이기 때문에, 철저한 계산과 작전이 없으면 결코 맞출 수 없다. 우리가 날리는 화살은 알아서 과녁을 찾아가는 마법화살이 아님에도, 우리는 눈 감고 귀 막고 무차별적으로 화살을 날리고 있다. 그렇게 하면 결국 힘에 겨워 지치는 것은 우리이며, 화살이 떨어졌을 때 일본으로부터 역습을 받을 수 있다.